공공미술포털 관련 전문가 칼럼입니다.

달라진 건축물 미술장식제도, 이것을 기대한다
윤태건
2011-06-17


미술장식제도가 드디어, 드디어 개정 됐다. 굳이 ‘드디어’를 반복한 이유는 이번 개정을 위해 정말 오랜 기간을 에돌아 왔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진흥법에서 ‘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 제도가 1972년 등장한 이후로 38년 만이고, 국내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담론이 등장한 1990년대 중반 이후로 15년 만이다. 무엇보다 공공미술 제도 도입을 위해 문화관광부에서 처음 공청회를 개최한 2004년 이후로 꼭 7년 만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한편으론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문화예술진흥법 중 관련 제도 개정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이 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으로 용어가 변경되었고, 둘째, 작품의 설치 또는 기금 납부를 건축주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게 했고, 셋째, (조성된 기금으로) 공공미술 진흥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게 전부다. 엄격하게 얘기하면 공공미술제도로 개정된 것이 아니라 단지 건축물미술‘장식’제도에서 건축물미술‘작품’제도로 용어만 바뀐 셈이다. ‘드디어’를 호들갑스럽게 반복할 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론 이번 제도 개정이 현재의 조건에서 최선의 방안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미술‘장식’제도가 2014년 일몰제(법률이나 각종 규제의 효력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없어지도록 하는 제도)를 앞두고 있어 마냥 미루기만 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택적 기금제도의 도입은 문화적 마인드가 낮고, 자발적 참여가 미흡한 건축주의 선택의 폭을 조금이나마 넓혀 주었다. 특히 조성된 기금으로 그간 미술‘장식’으로 담아내지 못했던 다양한 장소, 형태의 공공미술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민간의 미술‘작품’과 공공미술을 끌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미술’이 법적 용어로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용어의 변화가 아니다. 이제는 공공미술이 이 시대의 지배적 담론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그간 미술‘장식’이 갖고 있던 (반)영구적 오브제로의 한계, 건축물을 ‘장식’하는 협소한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틀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서 법이라는 한계 때문에 미처 담지 않았거나, 담기 어려웠던 부분들은 앞으로 시행령과 조례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현재 개정 법률에서 미루어 예상되는 문제점 몇가지만 짚어보자.
우선 개정된 미술‘작품’제도의 가장 민감한 부분은 미술‘작품’을 직접 설치하거나 기금 납부 중 건축주가 임의로 고를 수 있도록 한 ‘선택적 기금’ 제도의 도입이다. 법률에서는 ‘단순히’ 고를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추후 시행령에서는 기금 납부를 할 경우 할인율을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우선 법률에서 언급하지 않은 할인율을 시행령에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지, 즉 상위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법률적 다툼이 예상된다.



다음으로는 보다 민감한 문제로 할인율을 어느 정도 적용할 것인가다. 시행령의 윤곽이 드러나야 알겠지만, 사전 연구에서 양현미교수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적정 할인율로 30%가 제시되고 있다. 즉 30% 이하일 경우에는 선택적 기금제 도입의 실효성이 없고, 30% 이상이면 기금납부로 쏠리면서 시장에 타격을 주게 된다. 물론 사전 예측치의 싱크로율은 최소한 1, 2년 경과한 후에야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동주택에 대한 할인율 적용 여부다. 현재 미술‘장식’제도에서 설치 비용은 아파트 등 주거시설의 경우 0.1%, 비주거시설의 경우 0.7%다. 개정 미술‘작품’제도에서 기금납부시 할인율을 30%로 가정한다면 비주거시설의 경우 0.7%로 직접 설치하거나 0.5%로 기금 납부할 수 있다. 그러나 아파트의 경우 기금납부의 주체가 실제 소유주인 아파트 입주민이 아닌 임시 소유주인 건설사나 시행사다. 결국 건물이 완공되면 ‘툭툭’ 털고 나갈 건설사나 시행사가 기금 납부했을 경우 나중에 실제 소유권을 가진 입주민들의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어 분란의 빌미를 제공하게 될 수 있다. 문제는 거주시설이 전체 미술‘작품’제도의 60% 이상 차지하고 있어 이 부분을 제외했을 경우 기금이 대폭 감소하게 된다는 점이다.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기금납부와 관련해서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리베이트’다. 소위 ‘꺾기’는 그간 미술‘장식’제도의 고질적인 병폐였다. 과거에 비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모든 문제의 근원, 악의 축으로 지목되어 왔다. 이같은 리베이트 문제가 기금납부시 적용되는 30%의 할인율 덕에 다시금 확대재생산될 것이라는 지적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예측된다.
개정된 미술‘작품’제도는 건축주의 직접 설치나 기금납부의 선택권을 부여한다. 가령 건축주가 1억원으로 (원하지 않더라도) 자기 소유의 미술‘작품’을 자기 건물 앞에 설치하거나, 아니면 7천만원으로 (역시 원하지 않더라도) 남에게 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각적으로는 30% 저렴하니까 기금납부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본질적으로 소유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은 선택의 폭을 크게 제약하게 된다. 결국 (원하지 않는)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두가지 선택 모두 탐탁치 않을 것이다. 이때 일부 비양심적인 기획자, 작가들에 의해 30% 할인된 7천만원으로 미술‘작품’ 설치와 인허가까지 해결하겠다고 제안된다면 건축주 입장에서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되지 않겠는가? 결국 자칫 이번 제도 개정이 리베이트를 권장하게 되는 최악의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지금부터가 한국 공공미술사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번 개정은 미술‘장식’제도에 비해 상당한 진전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 또한 너무 명백하다. 이제는 예측 가능한 많은 문제점들을 단순한 기우로 만들고, 기대되는 여러 장점과 효과들을 보다 증폭시켜야 하는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 올 11월 쯤이면 새로운 미술‘작품’제도가 시행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공은 이제 시행령과 자치단체 조례로 넘겨졌다.


자료제공: 아르코 웹진 1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