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포털 관련 전문가 칼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러나 오래 전부터 알음알음 전파되기 시작했던 우리의 공공미술. 공공미술은 마치 바람처럼 그렇게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것에 대한 일차적인 단상은 대체로 공적 영역의 가치와 공공성 회복,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조정 및 조율이라는 목표에 부응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 정도를 떠올릴 수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세상 만들기’라는, 보다 포괄적인 관념에 충실하기 위해 주민들의 ‘참여’와 ‘개입’을 통한 ‘소통과 교감’을 대명제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일종의 개념적 단상이랄 수 있다. 그러나 미술이 삶과 만나 낳은 공동체의식의 실현 정도를 기준으로 하는 공공미술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냥 좋은 것, 유익한 것만 생성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거대한 공공디자인으로써의 공공미술이라는 슬로건과 도시환경을 구성하는 문화적 인자라는 개념 아래 미술을 통해 대화하고 심미성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심어준다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모범답안만 내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미술 바람에 묻어온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공공미술에 대한 또 하나의 단상을 통해 들여다본다.
놀라운 틈새, 예술과 사업사이 하지만 양이 증가할수록 일종의 부작용에 버금가는 희한한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근래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을 꼽으라면 공공미술프로젝트만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형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사업별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프로젝트그룹이든, 아예 공공미술만 전문적으로 ‘따내는’ 단체이든 공공미술로 민생고를 해결하려는 듯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업자’들이 부쩍 늘었다. 이는 공공미술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5년 전과는 분명히 다른 현상이다. ‘기업형 단체’들은 1천억 원이 넘는 시장, 건당 적게는 수백~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를 오가는 사업에 1년 내내 매달리곤 한다. 한 해 동안 한 두건 정도의 사업을 하는 조직은 어딜 가나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어떤 단체는 일 년에만 십여 건에 가까운 계약을 거둬들이며 수십 명에 달하는 스텝을 갖춘, 어지간한 중소기업 못지않은 위용을 꾸리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지나치게 조직화, 기업화, 거대화 된 일부의 경우 공공미술을 통해 예술적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통한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 구현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단, 미술의 기술적인 측면만을 이용한 노동력으로 수익창출에만 열심인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기획서와 구두로써 심사받고 지원받는다는 단점을 이용해 애초 기획의도와 예상 결과물에 비해 실제 설치작품이 양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있다. 휘황한 그래픽과 뛰어난 수사, 화려한 문장으로 점칠 된 기획서는 그럴싸하지만 막상 현장에서의 평가는 비례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차후 심사와 지원, 평가방식에 있어 변화를 꾀해야하며, 비평가와의 협업 등 보다 철저한 검증방식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공공미술 바람이 낳은 문제점 중 다른 하나는 관리 부재의 여전함이다. 수는 많아져도 관리의 질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조형물의 경우 미술장식제도에 의한 최고 산정비율인 1%를 100으로 볼 때, 대략 25% 정도가 행정비용과 유지비용으로 사용되고, 75% 정도가 작품제작비이며, 나머지는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는 비용과 재료비로 구성된다. 그러나 많은 수의 공공미술작품들이 제작비, 인건비 등은 예산에 포함시키지만 차후 관리비는 아예 없거나 적게 책정하곤 한다. 그런 이유로 언제나 우리네 공공미술작품들은 한번 하고 버려지는 ‘일회성 환경미화’, ‘물리적 개선과 변화’라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잘 해놓고도 욕을 먹으니 따지고 보면 이 역시 서둘러 개선해야할 과제다. 수 증가 대비 낮은 질, 시각공해 양산
솔직히 미술장식제도 역시 처음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던가. 따라서 작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와 법률의 개정이 아니라 그에 앞선 양심과 책임, 도덕적, 윤리적 규율의 회복이랄 수 있다. 출처: 『월간 퍼블릭아트』35호 (2009년 8), pp. 122-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