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포털 관련 전문가 칼럼입니다.

속도를 거슬러 관계를 만들다
구정화
2010-11-17


지역 재생과 예술이 결합된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에치고 츠마리 트리엔날레(Echigo-Tsumari Art Triennial 일본어 정식명칭은 ‘에치고 츠마리 대지의 예술제’(越後妻有 大地の芸術祭)이다, 이하 에치고 트리엔날레) 도쿄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산간지역 에치고 츠마리에서 3년마다 열리는 예술축제이다.

에치고 트리엔날레가 열리는 니가타현은 서울시보다 조금 더 큰 762㎢라는 면적에 겨우 7만5천 명이 살고 있어 심각한 인구 과소화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6년 ‘뉴 니가타 마을 만들기’가 조직되었고 에치고 트리엔날레는 ''뉴 니가타 마을 만들기‘의 한 분과인 아트 네클레스(Art-Necklace)에서 시작되었다. 1회 축제가 열린 2000년에는 지방정부와 해당지역 주민들의 많은 우려 속에서 두 개 마을만이 참여하였지만 2009년 4회 때에는 200개의 마을이 참여할 만큼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아졌다. 1회에 16만 명, 2회 25만 명, 3회 35만 명 등 회를 거듭할수록 방문객과 참여 작가도 꾸준히 늘어 2009년 4회 트리엔날레에는 40만 명을 넘는 외부인들이 방문하였다. 교통도 좋지 않고 외국어 서비스도 되지 않으며 숙박시설도 많지 않은 이 작은 산골마을에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벌써 10년째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 같은 것은 망해도 좋다”

“인간은 자연 안에 포함된다”라는 다소 선언적이고 철학적인 에치고 트리엔날레의 슬로건은 도시의 젊은이에게 던지는 산촌 노인의 잠언이자 에치고학(學)으로 명명되는 비효율성의 철학을 표현하는 간결한 메시지이다. “도시 같은 것은 망해도 좋다”고 할 만큼 도시중심의 자본주의화에 비판적인 총감독 기타가와 프람Fram Kitagawa, 1947년 니가타 출생, 도쿄예술대 졸업은 에치고 트리엔날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까지의 공공미술은 그저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는 작품을 설치하는 것으로 만족해왔다. 그러나 에치고 츠마리에서는 글로벌하고 버추얼한 상황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관계들을 회복하고자 했고, 그 관계를 만드는 것에 예술이 관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였다. 실제, 이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65세 이상 노인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자신의 장례식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할 만큼 전망이 없고 외부와 단절되어 있으며 정부에 대해서도 바라는 것이 없을 만큼 자포자기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이 지역 노인들이 타자와 연결되어 무언가를 나누고 소통한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이며, 그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예술이라는 데에 가장 큰 자부심을 갖는다.”

기타가와 프람이 이렇게 호언할 만큼 실제 에치고 트리엔날레 성공의 역사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관계들의 총합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관계들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에치고 츠마리식의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들로 전 지구적 상황 속에서 가상의 관계망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낯설지만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대중교통을 통해 에치고 지역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에치고유자와 역에는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안내데스크가 있다. 거대한 사인물도 깔끔한 데스크도 없고 소박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진심으로 축제를 꾸려온 에치고의 실질적인 주역인 봉사자들을 만나게 된다. 산골마을 전 지역에 걸쳐 산재한 미술작품을 보기 위한 에치고식의 예술투어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필자가 에치고를 방문했을 때 이용했던 버스투어프로그램의 가이드 역시 에치고 지역 출신의 한 젊은 여성이었는데, 주말을 이용해 내려와 자신의 고향을 방문한 외지인들에게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마을의 역사를 소개해주었다.

1회 행사를 앞두고 1999년 도쿄에서 만들어진 이들 자원봉사대는 주로 도쿄에 거주하는 1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학생, 직장인, 공무원, 예술가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었으며 예술제 기간 동안 통역과 작가어시스트, 행정지원, 가이드, 웹사이트관리 같은 일들을 분담하고 있다. 이들의 숫자는 거의 800여 명에 이르는데, 자발적으로 조직된 그룹이기에 축제기간 동안 학교 강당을 숙소로 이용하면서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50일간의 축제를 치러냈다고 한다. ‘코헤비타이일본어로 작은뱀 부대라는 의미''라는 애칭을 가친 이들은 에치고 츠마리 지역과 외부인을 연결시켜주는 경계에서 충분한 촉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식 조직표에는 없지만 이들이야말로 거대한 지역에 걸쳐 펼쳐지는 이 독특한 예술제를 치러내는 실질적인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과거 한국의 대학생들이 농촌지원의 명목으로 행했던 농촌활동의 예술적 버전, 혹은 도시인의 예술농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0년이 지나면서 이들에게 에치고 지역은 이미 제2의 고향이 되어 2004년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사무국 직원과 함께 가장 먼저 달려와 이 지역 주민들을 위로하고 도왔다고 한다. 이러한 이들의 헌신성과 적극성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던 주민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비효율성의 미학, 에치고적인 가치

에치고가 지향하는 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비효율성''이다. 대부분의 비엔날레들이 짧은 기간 최대한 많은 것을 보게 하는 효율성을 위해 기획된다. 반면 에치고는 미술작품을 에치코 츠마리 전역에 산재시켜놓음으로써, 관람객의 인내와 수고를 요구한다. 1회 때부터 설치되어 350여 점에 이르는 미술작품을 한 번에 다 보겠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못하게 하는 것이 에치고의 정신이다. 작심하고 한 달을 눌러있지 않는 한 어림도 없다. 아니 어쩌면 미술 작품을 다보지 못해도 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 안에 포함된다”는 슬로건을 증명하듯, 에치고에서 예술 작품은 자연 안에 고요히 잠겨있으며 문명∙기술은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다.

에치고를 방문하는 사람의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예술과 나란히 공존하는 자연과 자연에 기대어 살아온 인간의 역사이다. 1회 때부터 시도되어 2003년부터 본격화된 ‘이에(家)프로젝트’는 그러한 에치코식의 공존을 매개하는 주요한 공간으로 이지역의 빈집과 폐교를 활용한 것이다. 인구가 줄고 빈집과 폐교가 늘어나면서 고안된 이 프로젝트는 ‘팬클럽제도’라는 민간후원으로 마련된 재정을 통해 가능하였으며 지금까지 약 50여 개의 폐교와 빈집이 활용되고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3명의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에서 주민과 함께 작업한 동화작가 다시마 세이조의 설치작품이나, 2000년부터 폐교작업을 해온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마지막 학교> 등 학교라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에서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만나게 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다시마 세이조의 작품이 설치된 학교에서는 교실 한켠을 식당으로 운영하여 방문객들에게 지역의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실제 에치고 츠마리의 성공 속에는 지역의 자원과 환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는 한 차원 높은 전략이 숨어있다.

<우부스나의 집>은 100년이 된 거의 쓰러져 가는 집을 구입해 복원한 대표적인 ‘이에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완고한 주인을 설득해 복원함으로써, 이 지역 전통민가를 보존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이 방문객을 위해 간단한 음식을 판매함으로써 경제활동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처럼 에치고 츠마리의 프로젝트들은 지역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실질적으로 주민의 이해와 요구 속에서 결정되고 실행되고 있다. 에치고 츠마리를 방문한 많은 사람들은 축제 전반에서 지역민의 자발성과 지역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지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빈집이나 창고 등에서 펼쳐지는 예술프로젝트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던 주민들의 삶과 지혜를 기록하고 재해석하고 재생산함으로써 주민들에게는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방문객에게는 이 지역의 역사와 인간의 활동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하고 있다. 에치고 츠마리에서 다루어지는 문명∙기술은 인간과 자연을 넘어서지 않는 수준에서 협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기타가와 프람이 이야기하는 “인간은 자연 안에 포함된다”는 에치고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당신에게는 고향이 있다

에치고 츠마리에서 또 한가지 우리의 무릎을 칠만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향세(稅)’라는 것이다. 에치고 츠마리 지역을 고향으로 둔 도시인들은 ‘고향세’라는 것을 통해 에치고 츠마리 트리엔날레를 후원할 수 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고향세는 도시인이 소득세 중 일부를 에치고 지역에 후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로 입장료와 함께 예술제의 무시할 수 없는 재정수입이 되고 있다. 워낙에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이고 회를 거듭할수록 정부의 보조금은 줄어드는 상황이기에 고정적인 재정을 확보하는 것은 사무국의 주요한 미션 중 하나이다.

에치고의 재정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기업의 후원이다. 3회 때부터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베네세 그룹은 ''오헤비일본어로 큰뱀 후쿠다케베네세그룹 회장의 이름 위원회’를 설립하여 후원하고 있다. 민간후원인 ‘팬클럽제도’ 역시 주요한 재원이 되고 있는데 1만 엔의 회원가입비로 에치고를 후원할 수 있으며 주로 이에프로젝트와 같은 대규모의 예산이 투여되는 프로젝트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재정 확보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기타가와 프람은 주변의 기업인에게 후원을 독려하면서 “기업은 망하면 그만이지만 당신에게는 고향이 있지 않은가?”하면서 설득한다고 한다. 기타가와 프람의 다소 과장된 유머가 담긴 이 말 속에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도시인과 산촌마을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연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담겨있다. 이러한 신념은 불가능할 것 같은 간극-도시와 농촌, 젊은이와 노인, 자연과 문명과 같은-을 뛰어넘어 함께 소통하면서 공동체의 미래를 이야기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에치고학으로까지 명명될 만큼 에치고에는 이 지역의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는 많은 외지인과 전문가들이 있으며 도시인들도 에치고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운영된다. ‘계단식 논 뱅크’ 역시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한 사무국의 노력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버려진 땅의 양부모를 찾아주는 이 프로그램은 결코 쉽지 않은 자연조건 속에서 1500년간 쌀농사를 지어온 이 지역의 상징인 계단식 논에 대한 후원 프로그램이다. 계단식 논에는 벼농사를 짓기에 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전일본적으로도 가장 맛이 좋은 쌀을 생산해온 이 지역의 자부심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노인들 외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버려진 논들이 늘어가자 사무국에서는 버려진 논의 양부모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인들이 직접 쌀농사를 체험하고 쌀을 거둘 수 있게 하고 있다.


2000회에 걸친 설명회가 가져온 신뢰

그렇다면 에치고의 성공신화 속에 숨어있는 진정한 힘은 무엇일까. 15년이라는 기간 동안 변하지 않은 에치고의 지향점과 그로 인해 더욱더 가치 있어진 에치고적인 것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특히, 니가타현을 구성하는 2개의 시(애초에는 6개시였으나 2개시로 통합됨)의 공무원과 주민조직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그 노하우가 궁금했다. 이에 대한 기타가와 프람의 대답은 매우 명료했다. 1996년 ‘뉴 니가타 마을 만들기’의 자문위원으로 시작된 에치고와의 인연은 4년 후 1회 트리엔날레로 이어졌지만 오픈할 때까지만 해도 누구도 프로젝트에 대해 확신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오픈을 앞두고 공공예산의 투입이 결정되지 않아 정작 프람 자신은 개인의 돈으로라도 해야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니가타의 공무원과 의원이 예산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려 2000회의 설명회를 가질 만큼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던 기타가와 프람의 예술에 대한 신념과 열정이었다. 2000회라는 경이적인 숫자는 공무원들로 하여금 예술이 지역재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확신보다, 그것을 하고자 하는 한 인간의 노력과 열정에 대한 선택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아트 네클리스가 운영된 후로부터 15년의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에치고를 다녀갔다.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30%를 차지하던 이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을 텐데, 주민들에게 예술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에 대해 기타가와 프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분들에게 예술은 여전히 어렵고 귀찮은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예술이라는 것 때문에 고립되어 있던 자신들의 마을에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고, 그로 인해 산업화가 되면서 젊은이들이 살게 되었다. 이런 변화들은 이곳 주민들에게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된다. 마츠다이 농무대 앞 계단식 논에 설치된 이리야 타바노프의 작품 이야기를 하자면, 그 밭에 작품을 세우는 것에 대해 땅주인은 굉장히 반대했다. 원래 그 땅에 주인은 농사를 짓지 않고 있었는데, 작가가 많은 설득과정을 거쳐 농부의 모습을 조각상으로 설치했다. 그 작품이 설치된 후 땅주인은 다시 농사를 짓게 되었다. 물론, 우리는 이것만으로 예술의 긍정성을 설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예술은 어떠한 계기를 만들었고 그는 지금 농사를 짓고 있다.”




필자소개
구정화는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하고 쌈지스페이스 큐레이터를 거쳐 2004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서 커뮤니티와 예술의 접점을 만드는 일을 기획, 지원하고 있다.



출처: 『예술경영 전문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