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포털 관련 전문가 칼럼입니다.

프랑스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새로운 주문자’
김승덕
2004-08-01
프랑스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새로운 주문자’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커미셔너 프로그램
김승덕 -콘서시움 국제기획 디렉터


공공미술의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공공미술로 이미 역사가 축척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에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 이유 중에는 공공미술이 미술관이라는 보호된 특수 장치에서 벗어나 일반대중과 직접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은 좋든 싫든 간에 결과물만 보게 되는 수동적인 입장이다. 그렇다면 대중과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된다.

미술관이란 보호장치 벗어난 ‘새 주문자’프로젝트
파리 거주 벨기에 인으로 프랑스재단(Foundation de Framce)의 문화부분 디렉터인 프랑스와 에르스(Francois Hers)는 시민 개개인이 관객일 수 밖에 없었던 상화을 탈피하여 창작예술의 커미션을 하는 실제적 주문자의 역할을 취한다는 새로운 형태의 모델을 제안하였다. 프로토콜(Protocol)이라 하면 외교상의 의절이나 의정서의 의미로 쓰이는데, 프랑스와 에르스가 미술을 주문하는 새로운 주문자와 창작을 집행하는 예술가, 그리고 주문자와 예술가 사이에 중간역할의 매개자의 관계를 문서상으로 정의내린 일종의 정관이다. 그가 제안하는 프로토콜의 개념은 조형미술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건축, 영화, 문학, 음악을 위시해서 기존 혹은 미래의 모든 형태의 예술장착에 적용시킬 수 잇는 개념으로 확장된 의미의 공공미술을 의미하고 있다.
에르스는 이 모델을 <새로운 주문자(Les nouveaux commanditaires)(이하 ‘새 주문자’)라고 편의상 칭하고, 그에 관한 일종의 정관을 만들어 이를 ‘프로토콜’이라고 부른다.
현재 이 정관을 13개 언어로 번역하여 전파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모델을 제안함으로서 새로운 정의와 역할분담이 불가피해졌다. 이 정관에 나오는 ‘새로운 주문자’, ‘매개자’ 라는 명칭은 1990년에 프랑스재단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에르스의 제안은 1991년 이후 프랑스재단의 문화정책의 중심된 축으로 채택되어 지난 13년간 실제 현장에서 실현되고 있다. 지난 13년간 172건의 공공프로젝트가 등록되었는데 87건이 완성, 38건이 현재 진행 중에 있으며, 13건이 가능성 추진의 단계, 그리고 34건이 미결 상태이다. 프랑스 외 벨지움, 이태리, 스페인, 핀란드, 영국, 스웨덴에서도 하나의 모델로 채택되어 유럽을 중심으로 전파되고 있다.
에르스가 이 모험을 시작하게 된 것은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0년대 세대의 작가들에게는 ‘결코 미술관에서 끝나지 않겠다’가 슬로건 같은 것이었다. 현대 예술가들은 오랜 투쟁 끝에 자율성을 성취하였지만, 스스로가 자기 세계 안에 갇히는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고도의 기술발전과 더불어 사회, 정치, 경제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살고 있으며, 예술가들은 재주 잇는 전문가들이 생산하는 각종 현상을 매일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예술의 특수성과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예술적 창조는 미술관 소장품이 되는 것이 그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비엔날레, 페스티벌 같은 각종 행사들은 특별한 이벤트일 뿐이지 방향제시 조차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술가가 끊임없이 고립되는 사회생활에서 그의 활동이 어떤 의미를 갖기는 힘들다. 창조는 세계경험을 필요로 하고 또 예술가는 필요성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생산과 교환방식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에르스는 예술이 미술관이라는 보호장치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사회전체를 위한 합법성을 인정하면서 예술의 위치를 보장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새주문자’는 동시대 미술이 미술관 체제를 벗어났을 때 무슨 이유로 어떻게 창조적일 수 있는 가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새 주문자’ 프로젝트의 핵심은 매개자
90년 초 프랑스재단 프랑스재단은 1969년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가 창설한 사설기관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못 미치는 문화, 보건 혹은 빈민구제 등의 문제에 대한 적합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지원하는 곳이며, 그 방면에 메세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창설한 기구이다. 랑스에 세워진 많은 개인 재단들이 멤버로 가입되어 그들의 가능과 이익을 도모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재단의 운영기금은 기부금, 유산, 자체 내 자금의 이자로 운영되고 있다. 문화부분에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미술사와 예술분야의 연구부분과 음악, 미술, 영화 등 전 분야의 새로운 예술 창출을 위해 직접 지원한다. 예술 창출의 지원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전시나 음악회 등 이벤트 성격의 지원보다는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우선으로 직접 지원하는 경우와 시민이 주도하여 이루어지는 ‘새 주문자’ 프로그램의 새로운 모델을 지원하는 경우이다. 프랑스재단에서는 일 년에 걸친 연구와 토론 끝에 1991년 ‘새 주문자’모델을 재단 문화정책의 중심축으로 채택하여 그 유효성을 현장에서 실험하기로 결정했다. 은 문화 분야에서 특히 동시대 예술분야에서 예술가와 사회의 관계를 가깝게 재정립시킬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찾고 있던 중 프랑스와 에르스가 제안한 ‘새 주문자’를 기존의 공공미술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정책으로 채택하였다. 프랑스 재단은 선구자의 입장으로 이 프로그램을 보급시키는 데 앞장섰다. 에르스는 89년부터 프랑스재단의 문화부서의 디렉터로서 이 일을 추진해 왔는데, 일의 순서는 프랑스재단이 프로젝트 초기에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매개자를 선정하고, 매개자는 예술가를 선정하게 되면, 재단은 재정적 지원을 하여 각 프로젝트가 현실화되도록 돕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문자의 자격은 우리 사회의 일원인 시민집단, 작은 마을, 병원, 교회, 학교, 어느 상황의 누구라도 그들의 환경이나 주어진 상황에 변화를 필요로 하고 절실한 요구가 있는 사람, 그리고 예술작품의 실현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즉, 그 뜻은 ‘새 주문자’는 주문자의 의지에 따라 시작이 되고 진행되기 때문에 작품의 출현과 공공환경 내의 설치는 그 책임 하에 이루어지고 계획의 타당성과 지역사회에 요청할 예산의 정당성을 심사하는 입장에 선다. 반면에 매개자는 동시대 미술 분야의 사정에 매우 밝은 전문인으로 예술가와 주문자의 요구와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분야의 현장경험을 겸한 전문인이어야 한다. ‘새 주문자’의 성패는 사실상 매개자에 달려 있다할 만큼 매개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의 역할은 공공예술 작품의 실현에 관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우선 매개자는 먼저 주문자를 만나 그들의 요구를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을 한다. 여기서 재차 강조할 점은 기존에는 커미셔너나 큐레이터가 직접 프로젝트를 주문하였다는 것이다.
매개자는 주문자의 요구를 잘 파악하여 적합한 작가를 선정한다. 작가와 직접대화를 하며 계획을 진행해야 하는 사람은 정작 주문자 자신이기 때문에 일차 매개자의 선택은 프랑스재단이 하더라도 주문자는 매개자를 심사할 권리가 있다. 작가의 제안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작가와 주문자들은 공동으로 동시대미술의 사용가치를 찾고 이 과정에 있어 작가에게는 지역 사회 참여의 길을 얻고, 주문자는(시민이건, 그들을 대표하는 정치인이건)동시대 예술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매개자는 또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재정지원을 연계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매개자는 미술 전문인인 동시에 사회적, 경제적 현실에도 밝아서 주문자들이 참여하는 작품 실현에 따른 기술적, 행정적 제약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매개자는 협상이 난관에 부딪혔을 경우 프로젝트의 수정 혹은 중단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매개자는 전문 지식 뿐만 아니라 현대 창작에 대한 진정한 이해,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능력, 복합적인 요인들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다스리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재정적 지원의 구조는 주문자가 프로젝트를 선택하고 매개자가 결정되면 매개자가 수행하는 연구, 조사 단계의 비용과 매개자가 작가를 초대하여 현장을 답사할 수 있도록 하고, 주문자에게 구체적인 제안을 하여 주문자가 하나의 프로젝트로 결정을 하기까지의 모든 준비 단계의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이 프랑스재단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주문자의 결정단계까지는 재정상의 부담이 없으므로 좀 더 자유롭게 진행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주문자에 의해 프로젝트가 일단 채택되고 난 후에는 개인, 공공 지원으로 재정지원이 가능하게 한다. 매개자는 주문자의 지역 성격을 잘 파악할 수 있는 동시대미술의 전문인이어야 하지만 매개자가 선택하는 예술가는 미술 분야뿐만 아니라 건축, 영화, 음악 전반에 걸쳐 주문자의 요구에 가장 적합한 자로 어느 문화권의 작가라도 가능하다.

‘새 주문자’의 성공 사례들
‘프로토콜’이란 새로운 모델을 위한 정관을 전 세계 13개 언어로 번역하여 다른 문화권에도 이 모델을 소개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이 모델을 선택하겠다는 의지이다. 초기에는 이 모델을 가지고 인터뷰, 토론회, 세미나 등을 조직하였고, 정부 기관 등 여러 전문 분야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새로운 모델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작가들과 진지한 대화가 중요하다. 초기에 이 모델들을 적용할 당시에는 현실화되지 않고 준비단계 제안에서 무마된 경우도 다수 있었지만 지난 13년간의 성공 사례들이 이러한 모델의 현실적 실현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새로운 주문자’의 첫 번째 프로젝트 주문자는 1992년 디죵대학의 학생식당 주방직원들이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학생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주방 직원들은 무명의 직원으로 맡은 일만 할 뿐 학생들과의 대화는 물론 미술작품을 주문하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먼 얘기 같았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매개자는 주방직원들과 대화를 통해 주문자로서의 요구를 정리하였고, 한 때 디죵대학에서 학생시절을 보냈고 인물화를 그리던 불란서 거주 중국계 작가인 얀 페이 밍(Yan Pei Ming)을 선정하여 커미션을 주게 되었다. 10명의 주방직원들이 자신들의 초상화를 위해 모델이 되어주었고 그들의 초상화는 학생식당에 걸리게 되었다. 전통적인 유화재료의 초상화는 그들에게 위엄과 품위를 부여하는데 적합하였다.


공공미술의 영역이 사회현실의 어둡고 슬픈 구석까지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다면 감옥의 가족방문실과 병원의 송별실 같은 곳 역시 공공미술작업의 공간이다. 몽펠리어(Montpellier)감옥소의 형무소방문객과 가족지원협회 임원들은 주문자가 되어 가족 방문실을 새롭게 개조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새 주문자’를 의뢰하게 되었다. 작가로 선택된 장 르가(Jean Le Gac)와 헤르베 디 로자(Herve do Rosa)는 방문객의 가족들과 특히 죄수의 자녀들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고려하여 방문실로 향하는 복도와 방문실 내부를 가볍고 밝은 아이들의 놀이방 분위기로 바뀌었다.

‘주문자-매개자-작가’의 소통, 어떻게 할 것인가
‘새 주문자’가 기존의 공공미술과 다른 점은 기존의 공공미술이 보통 정해진 프로그램 속에서 유연성 없이 진행된데 비해 ‘새 주문자’는 작품 창조 과정을 작가와 함께 대화를 통해 풀어가기 때문이다(물론 프로그램이 나름대로 있다 해도 결과가 전혀 다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깨지기 쉬운 변수의 가능성이 항상 프로그램에 잠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과물을 날짜에 맞추어 완성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우선되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젝트 자체도 단기적 시간을 요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지속되는 프로젝트로 장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진행과정에서 결과 없이 끝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정해진 프로그램 내에서 몇몇 사람의 의견 일치로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행 과정 속에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제기되는 예술적 차원의 문제, 미술과 전혀 무관할 수 있는 주문자들을 이해시키는 문제, 그리고 재정적 차원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할 장벽들이 많다.
예술의 결과물은 프로젝트를 주문한 주문자와 프로듀서 역할의 매개자 그리고 작가, 이들 세 요소가 자율적인 비판의식을 가지고 각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바람직한 결과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여러 가지 장애물이란 변수가 이 프로그램을 보다 긍정적으로 만들어주고 기존의 공곰미술 프로그램과의 차별화를 가져다준다.
그 중 한 예를 들자면 디죵 근교의 슈노부(Chenove)시는 아랍계 사람들의 공동체인데, 대형건물에 주거인구가 밀집해 있고 건물자체도 안정상의 위험이 있어 건물들을 철거하고 빈공간에 시민을 위하여 공원 등 무엇인가 시민을 위한 복지시설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를 갖고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이 프로젝트의 주문자는 프랑스 태생의 아랍인 2세 젊은이들로 구성된 청년협회와 양로원 사람들과 철거된 건물주인들 그리고 슈노부 시 기관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해결 되어야 할 문제성을 많이 내포한 장소의 공공 프로젝트로 경험이 많은 미국작가 비토 아콘치(Vito Acconci)에게 의뢰됐다. 아콘치는 첫 번째 주문자와의 모임에서 시민들이 원하는 목록을 작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주문자는 세대에 따라 수영장, 영화관, 쇼핑몰, 정원 등 각각 다른 제안을 내놓았고, 아콘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단계적으로 모형을 만들어 제시했는데 두 번째 모임에서는 현지답사와 시장조사를 치밀하게 한 후 구체적인 회의에 들어갔다. 조사결과 500m 이내에 또 하나의 수영장이 있으니 또 하나를 짓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청년협회는 기존의 수영장은 백인용으로 사용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수영장을 주장하였고 노인들은 수영장을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결과적으로 수영장은 포기하기로 하고 결정했으나 그 결정은 민주적인 시민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걸친 결과였으므로 무리가 없었다. 세 번째 모형이 2년여에 걸쳐 제시되었을 때는 거의 실현가능 할 수 있었으나 당시 주문자 중의 주요한 결정권자인 시장이 정치적 상황으로 프로젝트의 무효화를 결정해버린 것이다.
당시 극우파가 우세하는 상황에서 소수민족을 위해 예산을 쓴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물론 이 단계까지는 개방적 과정으로, 그 시점까지으 모든 경비는 프랑스재단이 부담하였다는 것을 참언한다. 이러한 성격의 프로젝트에서는 경비는 사실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통 시나 마을에서 문화를 위한 예산을 특별히 책정하지 않더라도 복지시설을 위한 예산들은 보통 비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결국 그 공터에는 경찰서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공공예술의 성공은 상호 믿음을 통한 대화에 있다.
매개자로서 일을 진행하게 되는 절차를 보자면, 먼저 주문자들이 이미 완성한 프로젝트에 관해 들어 알고 의뢰한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잠재적 주문자들이 무엇인가를 원하다는 정보를 받게 되면 매개자로서 그 상황을 파악하고 과연 그들이 원하는 상황이 프로젝트로 가능한지를 파악한다. 파악한 후에는 잠재적으로 주문자들과 대화를 시작하여 열린 제안을 주문자들에게 한다. 프로젝트를 시작 할지는 주문자들의 판에 의해 정해지고 작가 선정에 있어서도 합당치 않으면 거부할 권리가 그들에게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주문자와의 긴밀한 대화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작가 선택이 거부된 적은 거의 없었다. 매개자가 상황을 믿고 프로젝트로 선택한 것처럼 주무자 역시 매개자의 선택을 믿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일단 프로젝트로 채택되면 그것이 주문자의 최종선택이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장애가 있더라도 결국 해결해나갈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은 디죵 외각의 작은 마을들에 산재한 옛 빨래터를 중심으로 한 것인데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고 버려진 빨래터를 이용하여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였다. 한 예로 28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블레세(Blessey)라는 작은 마을에 허물어져 가는 빨래터를 재정비해서 마을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 주문자로서의 마을 주민들의 요구였다.
이 프로젝트는 스위스 작가로 건축의 공간 개념과 조경을 작업 속에서 풀어가는 것으로 잘 알려진 레미 자우그(Remy Zaugg)가 담당하게 되었다. 빨래터가 반원형의 구조로 되어있어 마을의 진입로부터 방향을 바꾸고 돌담도 새로 쌓을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주변조경을 재조성하기 위해 50년생 나무를 100그루 사서 심기로 하고 마을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물을 준다는 합의하에 계약을 체결하였다. 작가와 마을사람들의 대화는 때로는 거칠고 험해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 합의점을 찾으면서 진행을 했다. 저예산으로 돌담을 쌓는 일 등은 소년원의 인력을 동원하였고 그들에게 사회참여의 기회를 주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거두었다.

매개자의 예산 집행이나 작가 선발 등은 완전 신임 하에 수행되는 것인 만큼 나름대로 커다란 권력이 따르기도 한다. 중요하고 또 어려운 점은 바로 이 주어진 권력을 잘 조절하고 적밯한 곳에 정당하게 쓰는 것이다. 매개자는 프로듀서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새 주문자’에서는 매개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예산책정이나 집행에 있어서도 관료체제가 아닌 단순한 경영구조 안에서 활동하도록 되어있다.
이 분야에 가장 유능한 매개자로 알려진 쟈비에 두루우 쟈비에 두루우는 콘서시움 아트센터의 세 사람의 관장 중에 한 사람으로 일하고 있으며, 부루곤뉴 대학의 미술사학과 교수직도 겸하고 있다.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의 커미셔너의 한사람으로 일했다. 의 경험에 의하면 예술과 무관한 주문자들에게 프로젝트를 납득시키기에 어려움이 있다기보다 공동작업의 개념을 작가에게 납득히키는 것이 비교적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새 주문자’의 개념을 창안한 프랑스와 에르스가 작가의 입장에서 예술가와 사회참여라는 문제를 신중히 연구한 끝에 하나의 모델로 제시할 수 있었다. 작가들은 공동이란 의미를 하나의 작업개념으로는 얘기하곤 하지만 실제 현실 참여 속에서 작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양보하고 공동작업이란 새로운 문맥 속에서 작가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동반되는 묘한 저항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두루우는 지적한다.

기존의 공공미술보다 휠씬 확장된 개념의 ‘새 주문자’프로그램은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만큼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사회의 일원으로 자기의 희망을 표현할 수 있고 수동적인 관객의 입장을 벗어나 능동적으로 예술작품의 제작을 가능하게 선도(initiate)하는 주문자의 입장도 쉽지는 않고, 또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오랜 투장 끝에 성취한 자율성을 공동작업이라는 사회와 연결된 현실적 상황에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매개자는 새로운 공공예술운동의 성공이 그의 손에 달려있는 만큼 절충하고 타협해서는 안 된다. 주문자와 예술가에게 ‘새 주문자’의 내용을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새 주문자’는 상호간의 신용과 믿음을 기본으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간다는 것이 중요한 이슈이다. 그래서 확장된 개념의 성공적인 공공미술은 접근할 수 없는 개인의 독백이 아니라 시민들과의 대화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김승덕 2004 문화예술 통권301호 (2004. 8) pp.3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