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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명 시장과 예술: 공공성과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구성
저자 박경섭 문서유형 논문
출처(학위수여기관) 전남대학교 대학원 일반대학원: 인류학과 발행년도 2013 년
내용 ■ 국문초록

시장과 예술은 아마도 인간의 삶 속에서 양 극단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시장은 사람에게 필요한 물자와 정보가 교환되고 관계가 조성되는 장소로, 예술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 삶의 고양으로 간주되는 고상한 것으로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기존의 관점에서는 서로 만나기 어려운 두 영역의 접촉이다. 두 영역이 만나기 위해서는 각 영역에 대한 관점의 수정과 더불어 구체적 장소에 기초한 실천이 필요했다. 이 논문은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대인시장의 사례를 통해 무엇이 시장과 예술의 접촉을 가능하게 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예술이 시장에 접목되었는지를 고찰한다.
1990년대 소매유통 환경의 변화와 도시의 재구조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재래시장의 쇠퇴는 소상인의 집결지인 재래시장을 전통적인 시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고, 재래시장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현대화라는 과제를 부여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재래시장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행된 시장의 시설과 경영 현대화는 많은 경우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했고, 이는 대인시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시의 재래시장은 소매유통의 현대적 공간인 쇼핑몰과 대형마트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일종의 발전의 결여, 도시의 공백과 같은 장소가 되고 있다. 재래시장은 도시에서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소매유통 경제의 확산 및 자본과 국가권력이 연합하여 진행해왔던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조성이 만들어낸 도시의 재구성 혹은 재영토화가 만들어낸 균열과 틈이다. 그러나 이러한 틈과 균열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예술적 가능성을 전유하려는 시도가 존재해 왔다. 문화 기획자들과 예술가들은 이러한 노력과 실천을 통해 도심의 유휴 공간, 슬럼, 폐공장 부지와 재래시장을 포함한 쇠퇴한 도시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다.
시장에 예술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장을 상행위의 장소가 아니라 문화를 담고 있는 장소로 인식할 필요가 있었고, 예술 활동은 개별 예술가의 작업실, 전시의 장으로서 미술관과 갤러리를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예술과 시장이라는 이질적인 영역, 예술가와 상인이라는 상이한 존재를 결합시킨 기획들과 활동들은 도시의 공간과 장소에 대한 새로운 이해,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실천, 국가의 문화예술정책의 변화에 조응하는 것이다. 이 글은 시장과 예술의 만남의 사례로 대인시장과 대인예술시장프로젝트를 살펴봄으로서 예술과 시장, 예술가와 상인의 접촉이 갖고 있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 대인시장에서 2008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는 국가 정책과 사회 운동이 상호작용하면서 어떻게 다양한 효과를 발휘하며, 이질적인 두 영역의 접촉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고찰하는데 있어서 풍부한 사례와 시사점을 제공한다.
재래시장을 예술 활동의 현장으로 삼는 문화ㆍ예술프로젝트와 일상과 예술의 만남을 매개하고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에서 공통적인 것은 지역성, 공공성, 공동체라는 용어의 활용이다. 국가 정책, 예술, 재래시장의 만남의 현장에서 지역성, 공공성, 공동체는 단순히 용어나 개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와 예술 활동, 집단 행동의 주체의 태도나 관점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논문은 대인시장의 사례에 대한 이해를 통해 로컬리티, 공공성, 공동체를 중심적 이념과 가치이자 목표로 삼는 집단적 예술 행동과 문화예술 활동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 대인예술시장프로젝트의 경험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에 근거한 문화ㆍ예술 활동은 공적 프로젝트 수행 집단을 정책 수행의 도구로 만들고 그 집단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침해할 수 있으며 프로젝트의 대상 집단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재래시장을 문화 활동과 예술 활동 무대로 삼은 실천은 최근 새로운 사회운동이 활동 단위로 지역과 장소를 주목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사회 운동은 많은 경우 지역성, 공공성, 공동체 개념에 대한 전유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삶의 형태에 대한 모색, 새로운 예술에 대한 요구는 중심부보다는 주변부, 기존의 경제 공간보다는 쇠퇴하거나 위기에 처한 장소들에 주목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인시장에서 예술 활동은 지역과 장소를 강조하는 다양한 사회 운동으로서 집단 행동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인예술시장에 대한 고찰은 새로운 사회 운동의 현실과 가능성에 대한 검토이기도 하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예술 활동들은 대인시장을 기존의 재래시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술인 공동체도 아닌 낯선 공간을 만들어 냈다. 상인들의 점포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뒤섞여 있는 현재의 대인시장은 단순한 재래시장도 아니고 예술인촌도 아니다. 시장에서 상인들과 예술가들은 어떤 한계, 문지방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대인시장을 고정된 의미와 가치에 묶어두어서는 안 되며, 이 장소의 불확실성, 모호함, 기이함을 제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인예술시장을 구축하려는 많은 행위자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는 국가 기구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자본주의적 경제를 관철시키는 힘에 의해 당사자들을 소외시키면서 상품화될 수 있다. 따라서 대인시장은 다른 삶의 형태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가능성과 잠재성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결정불가능한 장소로 남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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