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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명 공공미술의 공론장 기능과 역할
저자 김소은 문서유형 논문
출처(학위수여기관) 서울대학교 대학원 : 협동과정미술경영 발행년도 2014 년
내용 ■ 국문 초록

본 논문은 1970년대 이후 개념과 방식이 확장된 공공미술과 그것을 통해서 활성화된 공공미술의 공론장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연구이다.
공공미술은 20세기 이전의 전제국가나 20세기 전반의 나치 독일이나 소련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에서 정치 선전 도구로서 공공 기념비, 기념 동상 등의 형식으로 공공장소에 전시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1930년대에 미국에서는 벽화, 포스터, 추상 조각과 같은 형식의 공공미술이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등장하고 장려되었으며, 1960년대에는 미국의 공공미술 정책과 제도가 유럽까지 확산되었다. 이처럼 공공장소 속의 다양한 형식의 미술이 국가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발달되면서 그것을 일컫는 “공공미술”이라는 용어가 1960년대에 정립되었고, 이는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되거나 전시되는 조형물”이라고 정의되었다.
국가 주도형 공공미술과 함께 1970년대 이후에는 공공미술이 시 정부 차원에서 도시 재개발, 도시 미화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일반 기업들의 자사 홍보와 이미지 제고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한편, 1970년대 후반 이후, 위와 같은 도구적 차원의 공공미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미술가들이 등장하면서 소수의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의 취향이 대중에 강요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학계에서도 공공미술의 사회적 영향과 공공성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1970년대에 여성, 유색 인종, 노인, 노동자 계층, 학생, 젊은 세대 등, 다양한 정체성을 대변하는 집단들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드러내고, 요구를 표출할 수 있는 공론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와 같은 미술 내·외적인 변화들 속에서 새로운 방식의 공공미술을 시도한 미술가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국가나 기업의 이념이나 취향을 재현하기 위해 장소, 형태, 내용, 매체, 진행 과정에서 특정 또는 다양화된 공중(관객)의 존재를 배제했던 공공미술에서 벗어나,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공중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사회·정치적 쟁점, 공중의 일상생활, 특정 지역의 역사나 사회 갈등을 공공미술의 주제로 다뤘다. 제작 방식도 미술가와 관객의 공동 작업, 일시적 퍼포먼스 또는 장·단기 프로젝트 등으로 다양해졌다. 이처럼 공공미술의 주제와 제작 방식이 다양해지는 과정에서 공중의 참여, 공중과의 소통과 협업이 중시되면서 공공미술의 개념이 확장되었으며 미술가와 공중, 혹은 공중들끼리의 교류과정과 이를 통해 활성화되는 공론장 자체가 공공미술이 되었다.
공공미술이 항시적이고 권위적인 조형물을 넘어 참여자의 역할이 중시되고 어떤 기구나 조직까지도 포함하게 된 것은 요젭 보이스(Joseph Beuys)의 “확장된 예술 개념”, “사회적 조각” 개념과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예술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이스는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미술이라고 여겼고, 자기 자신과 그의 프로젝트 참여자들로부터 실질적인 사회 변화를 기대하고 실현했다.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간섭받지 않고 작동하는 토론의 장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의견교환 활동들이 그가 말하는 예술이자, 사회적 조각이다.
일부 공론장으로서의 공공미술은 미술가와 관객의 공동작업, 퍼포먼스와 같은 비전통적 매체의 측면에서 수잔 레이시(Suzanne Lacy)가 정리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의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레이시가 전통적인 매체들 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그것들 간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새로운 장르”라는 용어를 도입한 반면, 보이스는 미술이 공중의 일상생활과 직접 연결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자율적인 공론장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 연구자가 확장된 개념과 방식의 공공미술이 해야 할 역할과 필요성으로 강조하는 요소인 공론장은 위르겐 하버마스(J?rgen Habermas)의 공론장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치·경제·사회적 위기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그가 자유로운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회복과 공론장의 활성화를 주장한 것, 그리고 그가 제시한 “공공(public)”의 의미가 공공미술에서 중요하게 논의될 수 있다. 아울러, 그의 이론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비판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들에 의해 새롭게 정립된 공론장이 확장된 개념의 공공미술과 어떤 측면에서 연관성을 갖는지도 중요하게 보았다.
본 연구자는 공론장으로서의 공공미술 사례들을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누고, 각 범주를 다시 두 가지 하위 범주로 나누어 총 여덟 개의 사례들을 분석했다.
첫 번째 범주인 “역사의 망각에 대한 경고비로서의 공론장”의 사례들은 카운터모뉴먼트(Gegendenkmal)와 민주화된 기념비로 분류했다. 전자는 국가 이념을 공중에 주입하는 역할을 한 19세기 공공 기념비와 그 방식을 이어받은 현대 공공미술의 개념과 메시지 전달 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한 미술로, 독일 미술가 요한 게르츠와 호르스트 호하이젤의 작품을 예로 들었다. 후자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중의 기억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고 유지하기 위한 일반적인 기념관들과 목적, 형태, 건립 방식, 재료의 측면에서 차별화된 마야 린의 작품을 예로 들었다.
두 번째 종류인 “지역 역사에 관한 공론장”은 정부 주도 도시계획에 대항하는 프로젝트와 주민에 의한 역사기록 프로젝트를 세부 사례로 제시했다. 전자에는 경제논리에 치우쳐 지역민들이 소외되었던 영국 정부의 도클랜즈 재개발 계획에 저항해 주민들에 의한 대안적인 재개발 계획을 추진했던 도클랜즈 커뮤니티 포스터 프로젝트의 사례가 해당된다. 후자는 북아일랜드 데리 시의 시민권 운동을 주제로 한 역사 기록화에 대한 데리 시민들의 요구로 실현된 보그사이드 아티스트 사례를 분석했다.
세 번째 종류인 “환경 및 생태 문제를 둘러싼 공론장”은 환경·생태 공동체 프로젝트와 정부 프로젝트 속 확장된 개념의 공공미술로 분류했다. 전자는 공공미술 작업이 사회·문화·환경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나타나 이를 바탕으로 도시 공동체가 형성되어 후속 행동을 이끌어낸 사례로 미국 미술가 보니 서크의 작업과 한국 미술가 단체 리슨투더시티의 작업을 연구했다. 후자는 국가 주도 프로젝트 중, 진행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공론장이 활성화된 사례로, 공중의 참여와 소통에 중점을 둔 미술과 유사한 과정 및 파급효과를 발휘한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를 예로 들었다.
본 연구자가 분석한 사례들 중에서 앞의 일곱 개 사례는 미술가와 공중의 상호작용에 의해 탄생한 공론장이며, 마지막 것은 관 주도 사업으로 활성화된 공론장 사례이다. 이들은 공론장으로서의 기능, 환경적 목적,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시민들의 중추적인 역할, 후속 활동 유도 등에서 서로 공통된 특성을 공유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 연구자는 공공미술의 개념과 방식이 확장하게 된 배경과 미술가와 관객의 역할 변화를 1970년대 이후 미술 안팎의 영역에서 나타난 변화들과 연결지어 분석하고, 공론장으로서의 공공미술 사례들을 토대로 그것이 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그 필요성에 대해 고찰했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진행되는 마을 미술 프로젝트, 마을 공동체 프로젝트, 거리 벽화 사업 등에서 일반 사람들의 인지도와 참여율이 낮은 이유를 찾는 시도가 이루어지게 되고,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논의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본 논문의 핵심이 되는 확장된 개념의 공공미술과 공론장으로서의 공공미술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여러 작업 사례들을 소개한 지도교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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