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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명 ‘확장된 공론의 장’으로서 미술관 공공성에 관한 연구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공공성 개념을 중심으로
저자 주명진 문서유형 논문
출처(학위수여기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부 발행년도 2013 년
내용 <초록>

18세기 근대 공공미술관의 성립 이후, 미술관이 공공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공공성은 미술관이 추구해야 할 근본이념인 동시에 미술관 존립에 있어서 기본 전제가 되어왔다. 이런 점에서 미술관의 공공성 개념은 현대에 들어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 18세기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미술관 기능과 역할에 있어서 핵심 쟁점이 되어왔다. 특히 현대 대중사회로 접어들면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미술관은 공적 기능으로서 소통과 참여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술관이 추구해야 할 공공성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 없이 기능주의적, 공리주의적 관점으로만 미술관의 공공성을 정의해 온 것이 현실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술관이 지향해야 되는 공공적 가치에 반하게 되는 상황을 가져오고, 나아가 미술관 정체성 상실의 위기를 불러오게 되었다. 따라서 근원적인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새로운 공공성 개념의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고 여겨진다. 이에 본 논문은 미술관과 공공성의 관계를 반성적으로 고찰하고 보다 확장된 공론의 장으로서 미술관의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공공성 개념에 주목하였다.
한나 아렌트의 공공성 개념은 정치 이론과 관련된다. 정치는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소통을 통해 삶의 가치들을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삶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는 복수의 인간(men) 사이에서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가 강조하는 것이‘복수성(plurality)’개념이다. 그러나 아렌트는 플라톤 이래 전통정치철학이 정치와 공공성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논의하지 못하고 정치를 일종의 지배수단과 권력의 기능으로 다루어 왔다고 비판하면서 공공성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아렌트는 정치가 아닌 인간다운 삶의 가치추구를 위한‘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으로 공공성을 논의한다.
‘정치적인 것’은 개인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각기 다른 삶의 방식에 근거한 개별적 가치의 공존을 희망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위(action)를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다. 인간은 말과 행위를 통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실존가치를 드러내는 동시에 타인을 통해 자신이 보지 못했던 삶의 의미들을 깨달아 간다. 그런 점에서 행위는 복수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가장 정치적인 인간 활동이다. 아렌트는 개인의 자유로운 자기 발현이 보장되고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 인간다운 삶속에서 구현되는 공공성의 의미를 본 것이다.
결국 공공성은 복수의 사람들‘사이(in-between)’에 관한 것이다. 공동의 관심사를 자유로운 소통의 차원에서 풀어나감으로써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아렌트는 여기서 사람들‘사이’가 개인의 이기심과 이해관심들로 채워져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반성적 지평에서 행해지는 자유로운 담화로 채워질 때 진정한 공공성의 의미가 구현된다고 보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갈등 양상을 조정하면서 다수의 화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정치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아렌트는 칸트의 미학을 토대로 정치적 행위의 근간이 되는 정치 판단 개념을 제시한다. 칸트의 미적 판단은 반성적 판단에 근거한 판단으로 공통감에 기초한 복수의 관점이 공존하는 복수적인 판단이다. 여기서 개별적 인간은 미적 판단을 하는 주체이고 소통하는 존재이다. 이에 근거하여 아렌트는 개인의 판단이 주관적 감정에 치우친 이기적 판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별성 그 자체를 존중하는 동시에 보편성을 찾아가는 판단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이 세계적 관점으로 확장될 때,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다양한 가치들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오늘날 미술관의 공공성 문제를 살펴보면, 공적 가치보다 재정 확보에만 집중하는 경제중심주의, 권위주의적 태도로 미술관 행정 편의를 도모하는 효율성 중심의 관료중심주의, 지식권력의 지배로 예술을 향한 다양한 관점들을 억압하는 엘리트주의, 소비적 성향으로 인해 자발적 행위능력을 상실한 수동적 관람자들은 미술관의 공적 가치를 드러내기 보다는 오히려 이를 은폐시키는 요소들이다. 이로 인해 공중을 위해 존재해야 될 미술관이 오히려 공중을 소외시키는 현상을 낳고 탈공공화 되었다. 이에 한나 아렌트의 시각에서 개인의 가치가 존중받으면서 다양한 관점들이 공존할 수 있는 확장된 장으로서 미술관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확장된 공론의 장으로서 미술관은 예술을 향한 순수한 관심으로 모인 사람들‘사이’의 공간이다. 이 공간은 큐레이터의 단일한 관점이 군림하는 공간이 아닌, 개별적 인간들의 사회, 문화적 차이에서 나오는 관점의 다양성이 공존하면서 작품에 담긴 의미의 복수성을 만들어나가는 공간이다. 또한 관람자들은 주체성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서 예술에 대한 주관적 생각을 드러냄으로써 실존가치를 구현하는 장이다. 이는 타인의 생각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견의 다양성이 확보될 때, 누구나 제재 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는 자유 구현의 장이 마련될 수 있다.
결국 미술관은 제도적으로 주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복수의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사이'의 소통 속에서 만들어 나가는 공간이다. 규제되고 체제화된 공간 속에서는 인간관계 사이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미술관의 공공성은 한 사람 힘으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점의 다양성이 그대로 살아나면서 차이와 갈등의 여지까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는 미술관은 엘리트주의, 관료주의, 그리고 대중영합주의 등 어느 한쪽의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고 개개인의 자유가 구현되는 장으로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 문화예술의 역동성과 민주성을 창출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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