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포털 관련 전문가 칼럼입니다.

-도시공원 예술로- 계룡 금암공원 프로젝트: 차이를 위한 산책
전민정
2013-06-03

 

 

 

지난 5월 25일 토요일 오후 세 시. 계룡시 금암공원 내의 잔디 광장에서 조촐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여름으로 막 들어선 공원은 녹음이 짙어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그러나 한적하다 못해 심심하기까지 한 이 공원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공원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금암공원 프로젝트, 차이를 위한 산책’ 오프닝 행사가 시작되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호기심에 이끌려 공원으로 향했다. 혹자는 금암공원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주민이 공원에 모인 것이라 했다. 차이를 위한 산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계룡시, 한산함의 비밀
사람이 없다. 특히 거리를 지나다니는 보행자가 드물다. 신도시의 일반적인 특징처럼 이 도시 또한 낮에는 거의 비어있다. 거주민 대다수가 주로 대전이나 논산으로 출퇴근한다. 
        2002년 계룡부대가 이전하고, 그해 특별법에 의해 만들어진 계룡시는 이제 10년 정도 된 신생도시다. 그러다보니 대중교통은 여전히 부족하여 주민은 대체로 자동차를 이용한다. 거리 보행자의 수나 금암공원에서 이용자를 발견하는 빈도는 비슷하다. 그나마 식당이나 대형마트와 같이 상업적인 공간에는 이용자가 있는 편이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자동차를 이용해 공간에서 공간으로 점적인 이동을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의 이용이 극히 낮다.
        계룡시의 이러한 특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가장 주된 이유는 도시를 이루는 주민의 구성에 있다. 인구 구성상 60% 정도가 군인이거나 군무원이고 그들의 가족이다. 그 외 10%가 토박이이며, 나머지가 상업이나 기타 업종에 종사한다. 계룡시에 3군 사령부가 위치하고 있고, 가을마다 계룡대에서 군문화축제가 벌어질 정도로 군문화의 메카다. 군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이들은 2년 단위로 지역을 옮긴다. 그만큼 전입과 전출 신고가 잦다. 계룡시 사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의 40.2%가 향후 2년 이내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주 의식과 지역 커뮤니티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암근린공원, 차이를 숨기는 공원 
신도시를 계획하고 정비하면서 상가지구, 주거지구와 더불어 녹지지구를 계획하게 되고 이때 만들어진 것이 금암공원이다. 공원은 주공아파트를 끼고 농소천과 더불어 기다란 호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전체를 돌아보는데 30여 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지도 크지도 않다. 아기자기한 산책로는 흙길이 주를 이루고 중간 중간 보도블록 길과 이어져 있다. 수려하지는 않으나 그런대로 수종이 풍부하고 군데군데 쉬었다 갈 수 있는 나무 벤치가 있다. 짧은 산책에는 나쁘지 않은 환경이다.
        더불어 곳곳에 스트레칭을 위한 운동기구, 지압보도가 놓여 있고 오픈스페이스로 잔디밭과 3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원형 광장과 작은 공연이 가능한 원형 무대, 그리고 분수대가 있다. 계룡고등학교, 노인종합복지관, 어린이집, 계룡병원과 같은 공공 기관과 시설이 가까이에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 다양한 용도와 목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공원과 바로 인접한 주공아파트는 3개의 진입로로 연결되어 있다. 다만 지형 상 아파트가 높은 곳에 위치하다 보니 가파른 계단으로 오고가야 한다. 그리고 진입로를 제외한 곳은 나무 울타리와 철제 펜스가 막고 있어서 자유로운 진입이 불가능하다. 요약하자면 금암공원은 별달리 눈에 띨 만한 요소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공원이다. 

 

 

티팟의 사전 조사에 따르면 지역민들은 금암공원 내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민감했다. 수년 전 농구대의 골대를 제거해 버림으로써 아예 소음이 일어날 만한 동적인 활동을 제거해 버린다든가 원형 광장에서 진행된 주기적인 색소폰 연주를 민원으로 막아버렸다. 공원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이 민원 제기로 사라졌다. 
        한편 또 다른 주민들은 공원에 좀 더 특별한 요소들이 있기를 바랐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도 별다른 놀이기구가 없다, 그늘이 부족하여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또는 영화 상영처럼 좀 더 재미있는 문화적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한쪽에서는 공원이 정원이길 바라고, 또 다른 쪽에서는 공원이 공원이길 바란다. 이런 시선의 차이는 반복적인 민원 제기와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는 민원 해소 사이에서 무마되거나 묻혀왔다. 그러다 보니 공원은 갈수록 이용자가 줄어들었으며 몇몇 곳에서는 슬럼화 경향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에 실패함으로써 공원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무색무취의 공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하여 텅 비는 것이다.

 

 

공원, 시설을 넘어 정치의 장으로
19세기 서구에서 공원은 박물관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도시 노동자의 열악한 사적 공간의 대책으로 공공시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주중의 과도한 노동을 뒤로 하고 주말에는 새로운 여가문화가 탄생하였다. 박물관은 근대적인 시민이 알아야 할 교양을 교육하였고 공원은 노동 시간을 효과적으로 분절하여 장소화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도시생활 면에서 공원은 예기치 않은 사회문화 현상을 만들어 내었다.
        공원은 사람들 사이의 교류를 증폭시키고 대화를 발생시켰다. 소소한 날씨와 같은 일상적 이야기에서부터 당대의 심각한 이슈들까지 다뤄지기 시작하였다. 가끔은 시장이 서거나 축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즉,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다른 영역과의 접속이 가능해졌다.
        정치의 기본 툴을 커뮤니케이션으로 본다면 공원에서는 정치가 생성되고, 개인은 이제 적극적으로 개입과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개인이나 소수의 문제로 국한되었던 이야기들이 공공의 영역으로 넘나들었으며 그것은 다시 개인의 정체성이 확장되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시민사회의 성장은 이러한 공공적인 영역, 공공 공간의 확장과 이에 대한 시민의 개입 정도와 궤를 같이 한다. 지역에서 공공예술을 진행하면 지역민들이 이때를 기다린 듯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며 간섭을 한다. 사람들이 정작 원하는 것은 ‘그것이 맞다, 아니다’를 떠나서 자신의 의견이나 느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기회를 누리지 못해 왔던 것을 이참에라도 해소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이 되었건 간에 사람들은 다양한 견해와 취향을 취하게 되며 이를 표현하는 속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공공예술은 바로 이러한 역동적인 과정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며, 대화와 관심을 촉발시킨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을 넘어 정치적인 성격도 갖는다. 공공성을 누구나가 만족하는 ‘공익’이 아니라 단독자인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고 생성되는 개념으로 파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결국 서로가 갖는 시선의 차이, 입장의 차이, 취향의 차이를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 즉, 정해진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예술은 하나의 매개 고리로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 자체를 설계하는 일이여야 한다.

 

 

금암공원, 차이를 위한 산책을 떠나다
프로젝트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이러한 대화의 촉발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이다. 프로그램1 - 시민노래단 ‘고성방가’는 ‘시끄러운 상황을 만들어 갈등을 일으키자’라기보다는 기존 공원에 대한 관리 방식을 살짝 꼬집는 것이다. 불만합창단을 모델로 하고 있는 시민노래단 고성방가는 다문화다국적 노래단 몽땅이 진행한다. 참여 주민은 금암공원과 계룡시에서의 삶의 경험을 수다를 통해 끄집어내고 이에 가사와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든다. 즉, 시민은 예술을 통해 생활을 간섭하고, 공원을 간섭한다. ‘고민스럽고 성나는 일도 방긋 웃으며 노래(가)하자’는 고성방가는 정치예술이자 풍자예술인 셈이다.
        시민노래단 고성방가는 예술적 개입을 통하여 프로젝트에 대해 발언한다. 이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이야기는 참여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참여 작가들은 시민노래단의 발언을 참고하여 지역에 묻혀있던 이야기를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한다. 프로그램2 - 그 밖의 이야기는 SOA, 리우, 송봉규 작가가 참여한다. SOA는 형식적인 공원 시설물과 달리 주민들의 관계를 흥미롭게 유도하는 벤치를 계획 중이다. 로프형 벤치는 어린 시절의 그네를 연상시킨다. 앞으로 옆으로 흔들거리며 놀이삼아 타는 벤치는 공원에 재미와 활기, 우연적 만남을 부여한다. 송봉규 작가는 계룡의 흙을 섞은 옹기토를 구워 기와를 만든 후 겹겹이 쌓아 펜스를 만든다. 그늘이 턱없이 부족한 공원에 그늘을 만들고 일률적인 정자를 대신하여 흥미로운 자리를 제안할 예정이다. 리우 작가는 서로 마주보고 대화하는 인체 상을 제안한다. 작가가 채색까지 마쳐 완성하는 작품과 더불어 주민이 함께 채색하고 놓을 자리까지 결정하는 프로그램형 작품 등 두 가지 방식을 계획 중이다.

 

 

삭막하고 다소 적적하던 공원에 작품은 다양한 행위와 우연적인 만남을 유도해 냄으로써 지역민 간의 소통과 대화의 물꼬를 끌어낸다. 프로그램3 - 새 자리의 탄생은 이에 한 단계 더 나아가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더불어 공원 내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모색한다. 김영나 작가는 원색의 동그란 자리를 시민들에게 나눠준다. 이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자신들의 이용방식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공원에 색점의 풍경을 만든다. 이는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풍경과 공간의 사적 개입을 가능케 한다. 안지용 작가는 이용자가 배치 방식을 달리함으로써 형태가 변화하는 벤치를 구상하고 있다. 다각형, 삼각형, 서로 마주보는 형태, 평상 모양 등등 이용자의 수와 관계 방식에 따라 벤치는 자유롭게 변형된다. 마지막으로 한정림 작가는 상징적인 아이콘이 부족한 공원에 공동체의 꿈과 기원을 상징하는 성수목(별이 잠드는 나무)을 만든다. 별자리를 새겨 넣은 나무는 정서적 매개물이 될 예정이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에는 지역에 근거지를 둔 지역 작가 2인이 함께 참여한다. 윤상욱, 김용수 두 작가는 지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시선을 갖고 있으며 지역 작가로 수년간 보아온 지역의 정서나 스토리를 공원에 표현할 예정이다.

 

 

앞으로 5개월간 진행될 프로젝트는 주민들과 만나는 과정을 통해서 최종적인 작품 안을 결정하고 이를 제작 설치할 예정이다. 이러한 과정은 형식적인 공청회나 설명회가 아닌 시민노래단의 흥겨운 워크숍과 병행된다. 시민의 간섭을 예술적 표현과 개입으로 엮어내는 것이다. 어쩌면 프로젝트의 성과나 공원의 실질적인 변화는 이러한 과정의 설계가 관건인 셈이다. 금암공원 프로젝트는 시민에서 시작되어 시민의 품으로 예술이 돌아가기를 기대하며 지금도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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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정 ((주)티팟 실장) http://www.tp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