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포털 관련 전문가 칼럼입니다.

상암 DMC, 첨담 미디어 시티에서 만난 공공미술
허태우
2013-05-22

 

 

1980년대 초반의 얘기다. 무더운 여름날 문밖을 나서면, 어김없이 한낮의 뜨거운 바람을 타고 시큼한 냄새가 실려 왔다. 어른들은 그게 난지도에서 오는 냄새라고 했다. 난지도(蘭芝島). 그곳은 저 위쪽 동네 어딘가에 있는 섬이었다. 이름처럼 난꽃이 가득해야 했지만, 사람들은 그냥 그곳을 쓰레기장이라고 했다. 그때 난지도와 쓰레기장은 동의어였다.
        초등학교에서 임진각을 견학하러 가던 날, 버스 창밖에 잠시 보이던 난지도의 실체는 과연 명성 그대로였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쓰레기더미라니. 마치 우주의 쓰레기를 다 모으려는 듯, 한쪽에 줄지어 서 있던 트럭에서 연신 쓰레기가 쏟아졌다. 쓰레기더미 위에선 폐품 수집원이 쓸모 있는 것을 골라내느라 분주했다. 거기에는 난꽃은 커녕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았고, 매캐한 냄새와 소음, 먼지가 범벅이었다. 버스 안의 아이들은 모두 코를 막았다가 난지도를 지나 한참 후에야 숨을 내쉬었다. “웩~ 난지도!”하며 말이다. 기록에 따르면 한때 난지도 쓰레기 더미의 최고 높이는 95m나 되었다고 한다. 보통 매립장의 높이인 45m에 비해 두 배나 높은 무시무시한 산을 쌓은 것이다.
        그렇기에 상암동의 사정도 좋지 않았다. 한강에서 불어온 강바람이 난지도의 냄새를 싣고 가장 먼저 도착하는 동네였고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 중 하나였다. 그곳의 주민 중 일부는 난지도에서 찾은 재활용 쓰레기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이런 환경 아래 빈민촌이 형성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쓰레기 산이 포화상태에 부딪혀 성장을 멈춘 1993년까지 이런 생활 구조는 계속 유지됐다.

 

 

‘디지털 미디어 시티’로 부활한 상암동

 

20년 후, 상암동의 난지도 매립지와 빈민촌은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에서 멈추지 않고 부활했다는 말이 적절한 듯하다. 상암동은 이제 에코와 첨단이라는 두 키워드를 지닌 서울의 부도심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전 세계 대도시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한 예가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예전의 이 지역을 아는 사람에겐, 경천동지(驚天動地 )의 변화라 하겠다. 우선 쓰레기 산 2개를 덮어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을 만들었고 월드컵에 맞춰 월드컵경기장을 개장했다. 난지도 일대 빈민촌을 뒤엎어 아파트촌과 DMC(디지털 미디어 시티)를 조성했다. 특히 DMC는 현재 상암동의 대표 상품이라 할 만하다. 이곳은 서울시가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조성하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클러스터. 쉽게 말해 방송사와 IT 기업이 둥지를 트는 특별 구역이다. 이름에 걸맞게 첨단 시설을 갖춘 빌딩이 대거 입주해 있고, 여전히 몇몇 빌딩을 건설 중이다. 폐품 수집원의 터전인 가건물이 즐비했던 바로 그 자리에 말이다.

 

임옥상, [하늘을 담는 그릇], 2009 


도시에 남아 있는 옛것을 지우거나 덧씌워, 새것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오늘날 더는 낯설지 않다. 제법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 대도시에서는 특히 빈번하게 생긴 일이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하이라인파크 같은 규모에서부터 일본 도쿄의 롯본기미드타운이나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처럼 거대한 프로젝트까지 그 면모도 다양하다. 영국 런던처럼 구시가지 곳곳에 새로운 건축물을 세워 이질과 조화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예도 있다. 아무튼 오늘날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 일어나는 도심 살리기 프로젝트는 부지기수다.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바쁜 대도시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에 한창이다. 그 와중에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공통점도 눈길을 끈다. 꽤 흥미롭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바로 어느 프로젝트나 예외 없이 문화?예술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지하로 땅을 파 내려가든지 하늘로 바벨탑을 쌓든지, 그들은 모두 문화?예술을 매개로 사용자, 즉 시민과 소통을 꾀하려 한다.
        상암 DMC는 재개발 프로젝트의 전형적 문법을 따른다. 질서정연하게 구획을 나누고 업무 구역과 휴식 구역을 배치했다. 두 구역의 주인공은 당연히 업무용 빌딩과 휴식용 평지(혹은 공원)다. 그리고 미술작품이라는 조연이 꼭 하나씩 등장한다. 명품인지 그저 그런 급인 평가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꼭. 왜일까? 미술계나 건축업계 사람이라면 익히 알 수밖에 없는 문화예술진흥법 때문이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진흥법에는 ‘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의 설치’ 조항이 있다. 총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은 건축비용의 1퍼센트 이하의 범위에서 미술작품을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 1995년부터 의무화된 조항으로, 일견 참 기특한 법령이다. 그런데 이게 엉뚱한 문제를 갖고 있었다. 애초에 ‘미술작품’이 아니라 ‘미술장식품’이라는 용어를 쓰고 만 것이다. 상상해보자. 작품이 아니라 장식품이라고 불렀기에 발생하는 문제를. 장식품이 되는 순간 미술작품은 건축물에 붙어버린 껌 같은 존재로 몰락해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조연은 입을 굳게 다문 엑스트라로 희미해진다. 이 조항의 모태였던 공공장소의 미술(Art in Public Space)이라는 개념도 사라져버릴 수 있다. 이렇게 곡해된 조항이 가져온 결과를 보자. 한때 국내 대형 빌딩 앞에 서 있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조각품들 말이다. 다행히 2011년부터 조항의 수정에 따라 미술작품의 범위 설정에 유두리가 생겼다. 회화, 조각, 공예, 사진, 서예, 벽화, 미디어아트 등 조형예술물과 분수대 등 미술작품으로 인정할 만한 공공 조형물을 포함하게 되었다. 더불어 미술작품과 공공장소의 미술을 대하는 태도도 긍정적 변화가 일었다.

 

상암동이 가진 장소의 힘은?


첨단 미디어 시티의 공공미술은 어떨까? 공공미술에 관한 한, 안타깝게도 상암 DMC는 멈춰 있는 것 같다. 과거 우리나라 공공미술의 미진한 문법을 답습하는 듯하다. 일단 이곳의 공공미술 현황을 알아보자. 대표 환경조형물인 (이진준)와 상징조형물 <밀레니엄 아이>(토마토아트기획: 이배경, 유영호, 나점수)는 이미 완성되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건축물에 관한 미술작품이 11개 설치되어 있으며, 공사 현장을 가리는 총 길이 7.2km의 아트펜스가 놓여 있다. 작지 않은 규모다. 공사 중인 대형 건축물이 완공되면 공공미술작품의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이 외에도 총길이 1.14km의 DMS(Digital Media Street)에서는 디지털 정보제공 장치인 인포 부스와 IP-인텔라이트 가로등, 여러 정보를 공공장소에서 시각적으로 노출해주는 미디어 보드와 이보드 등을 마주칠 수 있다.

 

토마토아트기획, [밀레니엄 아이], 2010

 

그중 상암 DMC를 대표하는 공공미술작품은 <밀레니엄 아이>다. 높이 23m의 이 조형물은 DMC 서쪽 진입부에 웅장하게 서 있는데, 142개의 거울 구를 첨성대 형상으로 쌓아 올렸다. 바닥에 놓인 12개의 LED 라인과 지름 3미터의 우물형태 LED 패널에서 나온 영상이 거울 구에 반사되어 전체 조형물을 화려하게 빛나게 해준다. 랜드 마크 성격의 공공미술작품으로 알맞은 역할이다. 다만 작품의 의도나 기능적인 면은 일반인이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다.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출사를 나와 사진에 담기에는 좋지만 시민이 현장에서 공감할 여지는 적다. 마냥 바라보며 화려함과 웅장함을 피상적으로 경험할 뿐이다. 게다가 <밀레니엄 아이>는 상암 DMC의 끄트머리에 있는 구룡근린공원에 서 있다. 오고 가며 우연히 보기에도 쉽지 않다. 이걸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에 있는 스페인 조각가 호메 플렌사의 <크라운 파운틴(The Crown Fountain)>과 비교해보자. <밀레니엄 아이>처럼 LED기술을 활용한 이 작품은 15미터 높이의 직사각형 화면에서 시카고 시민 1,000명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준다. 옆집 사는 김씨의 얼굴이 와락 등장하는 셈이니, 시카고 시민이라면 이 작품 앞에서 유쾌해질 수밖에 없다. 가끔 입 부분에서 물줄기가 나올 때면 너나 할 것 없이 즐겁게 작품 앞으로 뛰어간다. <밀레니엄 아이>와 <크라운 파운틴>. ‘공공(公共)’의 의미에 어느 작품이 더 충실한지 부연이 필요할까?

 

토마토아트기획, [밀레니엄 아이], 2010


세계 최장 길이의 가림막이라 홍보하던 아트펜스는 좀 더 안타깝다. 이 작품 앞에 서면 아쉬운 한숨이 나올지 모른다. 이미 강익중 작가의 광화문 복원현장 가림막이던 작품 <광화문에 뜬 달> 덕택에 시민의 눈높이는 한껏 올라간 상황인데, 아트펜스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최장 길이’라는 수식어가 공공미술작품의 가치를 높이기는 어렵다. 뿐만 아니라 바슐라르의 4원소론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아트펜스의 제작 배경 설정도 괴이하게 들린다. 작품 스스로 너무 어려워져 버렸다. 물론 아트펜스를 만든 작가의 노력과 헌신은 고마울 따름이다.

 

[서울 마포구 상암 DMC 아트쉘터]


다른 공공미술 작품도 엇비슷하다. 디지털이라는 단어에 너무 경도된 탓일까, 혹은 이곳을 홍보하는데 치중한 탓일까. 대부분 작품이 LED를 사용하거나 매끈한 반사 소재를 사용해, 형태만 다를 뿐 개성이 부족하다. 공공미술 작품이 자꾸 자신을 치장하는 데 급급한 것도 문제다. 관객과 이성적 소통도 감정적 접근도 어렵게 만들었다. 테크놀러지를 활용한 미술작품들은 유지 보수가 어렵다는 단점마저 지닌다. 한껏 LED를 밝혀야 할 작품이 침묵에 잠겼을 때의 황망함이란. 그럴 때, 공공미술은 독자(獨自)미술이 되기에 십상이다. 그래도 몇몇 작품은 상암 DMC와 제법 어울린다. <달빛 소나타>(양만기)와 를 보자. 이 작품들은 빌딩과 빌딩 사이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공공장소에 자리 잡았다. 빌딩 옆에 붙어 있거나 외딴곳에 있는 것보다 접근하기에 쉽다. 작품이 곁에 있다는 기분이 든다. LED를 활용해 작품 자체가 눈길을 끌 만큼 화려한 면도 있다.

 

이진준, [THEY], 2010


가장 공공미술다운 작품은 다. 상암 DMC에서 볼품없어 보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먼저 공공을 생각했다. 펜택&큐리텔 사옥 뒤, 새누리어린이공원에 가보자. 난데없이 투명 아크릴로 만든 공원 입구가 보일 것이다. 그게 공공미술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린이공원에서 자연스레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설치되었다. 사람들이 작품이 구축한 공간을 드나들며 경험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상암 DMC의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상업 지구에서 툭 튀어나와 주거 지구에 자리를 잡은 이 작품은 그나마 상암동이라는 공간과 호흡을 같이 하려 한다. 한마디로 사람 냄새가 난다. 이 작품을 경험한 사람들의 존재감 말이다.

 

[큐브],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새누리어린이 공원 내'


“중요한 것은 미술을 통해 그 땅의 중요성을, 장소의 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일본 공공미술계의 대부인 기타가와 후라무 씨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상암동이 어떻게 자라왔는지 되새겨보자. 아무리 첨단 빌딩이 꽉 들어차도 상암동에서 불어오던 매캐한 냄새는 잊히기 어렵다. 지우고 싶은 과거라지만, 차곡차곡 쌓아 지금의 상암동이 되었다. 그런 이야기는 모두 어디에 갔을까? 한때 난지도의 거대한 쓰레기 산이던 노을 공원에서 <하늘을 담는 그릇>에 올라본다. 제목처럼 그릇을 닮은 이 작품은 전망대와 쉼터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한강과 상암 DMC가 두루 보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20여 년 전까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힘겹게 올랐을 그 자리. 여기에 발을 디딘 순간 그때의 삶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닐 테다. 작품이 장소의 특수성과 연결되어 있다. 소통하지 않은 공공미술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아쉽게도 지금 상암 DMC의 공공미술 작품에는 무척 말끔한 향기만 올라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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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허태우 <론리플래닛 매거진코리아> 편집장

일러스트: 박정은 (http://www.jung-park.com)

사진: 권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