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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공미술, 어떻게 변화하고 작동해왔는가 : 공공미술의 변천 양상 개괄
김장언
2008-03-01

한국의 공공미술, 어떻게 변화하고작동해왔는가


김장언(미술평론가,큐레이터)

한국사회가 본격적으로 문화사회로 이행하면서 우리는 ‘공공미술’이라 불리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일상에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적 삶의 조건을 향한 이러한 욕망은 도시 전체를 문화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하며, 관과 기업으로 대표되는 주체들은 다양한 문화예 술 형식을 삶의 공간으로 초대하고 있다.1 미술 역시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초대되고 있으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 근저에서 현재 작동하고 있 다. 그러나 이러한 초대의 일면을 살펴보면, 관이나 기업은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을 통해 자신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2 이러한 현상은 그 주체가 누가 되었든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실행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공공미술에 대한 담론의 지평을 확장하 는 데 있어서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공공미술 프로젝트 대부분이 관이나 기업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행정적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는 까닭에 공공미술 담론이 일종의 행정적 방법론 혹은 경영적 전략으로 변질되는 현상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의미는 매우 중요한데, 현재 공공미술의 상황을 되짚어 보면 공공미술의 주체들은 내외부적으로 시민사회에 일방적으로 봉사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러한 입장 역시 공공미술을 논의하는데 있어 다양한 의미의 진폭을 생산해내기 어렵다고 본다.
이 글은 공공미술로 인식되는 다양한 현상들을미술과 공공성으로 분리하여 의미를 되짚어보고,한국 사회가 공공미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작동시켜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의 미술 장르로서 공공미술을 양식적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미술이 공공성과 조응하는 그 순간에 만들어지는 다양한 논의의 지평을 간과하기 쉬우며 또한 미술,그 자체가 변화시키고 작동시키는 고유성과 자율성을 간과할지도 모른다.3

공공미술의 의미와 변화과정
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 누구도 이 물음 앞에서 쉽게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미술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것과 공공성이라는 지극히 공적인 것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이 공공미술을 둘러싼 많은 오해와 억측 그리고 소란들을 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통상 공공미술을 ‘공공장소에 설치된 미술작품’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기존 시설물들을 예술적으로 바꾸는 무엇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해의 방식은 공공미술을 하나의 ‘유형적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야기되는 다양한 공공미술에 관한 인식과 활동 등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공공미술을 설명하는 다양한 책과 글에서는 공공미술을 간략하게 3가지 형태로 분류하는데, ‘공공장소 속의 미술’(Art in Public Space), ‘공공장소로서의 미술’(Art as Public Space), ‘공공의 관심 속의 미술’(Art in Public Interest)이 그것이다. 공공미술이 이러한 발전단계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이 대략적인 요지이다.

□ 공공장소 속의 미술
‘공공장소 속의 미술’은 우리가 ‘공공미술’ 하면 쉽게 떠올리는 광장이나 도로의 중앙 분리대 혹은 대형 건물의 내외부에 설치되는 미술작품을 지칭한다. 이는 명패 조각, 풍덩 예술(plop art: 예술가가 작업실에서 혼자 만들고 공공장소에 풍덩 던진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 껌딱지 조각 등으로 희화화되며 바람직하지 않은 공공미술의 하나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공공장소 속의 미술’이―물론 이것이 미술의 민주화에 대한 매우 소극적인 방법론이기도 하지만―특정 계급과 계층의 전유물에 국한되거나 혹은 미술관이라는 제한적 공간을 방문해야만 체험할 수 있었던 폐쇄적 대상에서 누구나 언제나 체험할 수 있는 열린 대상으로 미술을위치지웠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폄하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이러한 태도는 지금도 유효할 수 있다.

□ 공공장소로서의 미술
‘공공장소로서의 미술’은 환경 미술, 장소특정적 미술 등과 같은 현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 야기된 것으로 파악된다. 자신이 소속된 제도적 장치들, 미술관, 화랑 혹은 미술 그 자체를 다시금 고찰하면서 야기된 것으로, 삶과 자연의 영역으로 미술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것은 미술 내부적 동인에 의해서 공공성을 조응한 것으로 파악된다. 모더니즘 미술정신이 사회로 확장되면서 그 가능성을 실험한 것이 ‘공공장소로서의 미술’의 태도를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즉, 공공장소가 미술의 적극적 대상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 역시 새로운 장식 혹은 새로운 기념물에 불과하다는 비판4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장소특정적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공간에 대한 작가의 개입이 (그 개입이 미술적으로 얼마나 훌륭하던지 간에) 앞서 언급한 공공장소 속에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이러한 역할이 시민사회를 통해서 배척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의 대안으로써 (공공)장소의 개념을 건축, 공원 심지어 도시 디자인으로 확장하며 삶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시도로 변화되기도 했다.

□ 공공의 관심 속의 미술
‘공공의 관심 속의 미술’은 우리가 통상 커뮤니티아트, 새 장르 공공미술 등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공공미술에 있어서 공공성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미술이 사회와 결합되는 데 있어서 그 역할과 의미를 다각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시도로서 야기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공공미술에 있어서 수동적인 감상자의 위치에 놓여진 관객, 시민사회의 구성원을 그 주체의 하나로 바라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미술의 외연을 사회 내부 속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한 시도로 인식된다.
이러한 공공미술의 변화 과정 속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미술이 사회의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성숙에 따라서 공공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변화시켰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미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율성이 민주주의의 이행과정을 통해서 공공성과 조응하고 의미를 변화시켰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공공미술의 ‘변화’ 과정을단순한 미술의 ‘발전’ 단계로 인식하고, 공공미술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형태와 가치가 커뮤니티 아트 혹은 새 장르 공공미술인 것처럼 인식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이것은 공공미술이 지금까지 지나온 역사의 과정에서 그 변화의 동인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변화의 결과물을 유형학적으로 분류하고, 그것을 미술 형식의 발전단계 지표아래 놓고 공공미술의 의미를 추적하는 매우 사후적 태도이다.

한국에서의 공공미술 변천 양상
한국 미술계에서 2007년은 가히 공공미술의 해라고 말할 수 있다. 전국적 단위로 확대 실행된 <아트인시티 프로젝트>부터 안양시의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서울시의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등 굵직굵직한 공공미술 관련 프로젝트들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갑자기 일어난 변화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공공예술은 정권에 의해, 또는 법령에 의해 알게 모르게 시도되어왔기 때문이다.

□ 80년대: 민주화와 기존의 공공미술에 대한 고찰
80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어쩌면 미술에서 공공성의 논의를 기존과는 다르게 펼쳐 보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는지도 모른다. 80년대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공공예술은 민족 기록화, 국가적 영웅의 동상, 다양한 방식의 기념비 등으로 대표되는 국가 만들기에 동원되는 공공미술이거나 혹은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에 따른 행정적이고 관례적인 형태로 대형 건물의 외부와 내부에 설치된 미술작품들, 조각 심포지엄이나 조각공원과 같은 조각품 설치가 대표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로의 이행은 공공미술에 대한 기존의 논의와 평가 방식에 대해서 다시금 고찰하도록 요청했으며, 정권의 변화는 그러한 요청을 단순히 담론의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실행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 90년대 이후: 행정적 토대 마련과 비판적 담론 등장
90년대부터는 한국 미술계에서 ‘건축물 미술장식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담론들이 등장했으며, 이를 토대로 관례적으로 시행되던 공공예술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공공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자 하는 ‘소박한’ 시도들이 있었다. 여기에서 ‘소박한’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이러한 시도들이 대부분 논의의 차원에 머물거나 구체적인 프로젝트의 결과물로서 실행되기 어려운 조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등장은 사회전반에 걸쳐 공공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촉발시켰으며 사회제도적 장치를 구축하게 했다. 이러한 영향관계 속에서 미술계 역시 90년대 담론의 차원으로 머물던 공공미술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되는 행정적·물질적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5 따라서 우리는 공공미술에 있어서 공공성이 작동되는 방식을 90년대 말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90년대 말 이후에는 공공성을 보다 본래적으로 사고하고 작동시킨다. 최근의 사례를 떠올려 보면, 공공미술관련 법제도 정비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과 새 장르 공공미술의 본격적인 지원과 실행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법제도 정비의 경우는 지금까지 건물주와 작가 사이에 자율적으로 진행되던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를 일종의 공공미술기금 형식으로 변화시켜 공공미술의 집행과 실행에서 투명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건물주가자신의 건물에 설치할 작품의 작가들을 직접 선택하고 국가기관의 심의를 받은 이후 설치했다면, 제안된 제도에 따르면 건물주가 건축비 대비 미술작품 구입비용을 공공미술기금재단에 납부하고 재단은 그 돈을 바탕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것이다. 기존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가 건축주와 작가 그리고 브로커 간의 공모와 결탁을 통해서 많은 비리를 양산해왔기 때문에 제안된 이러한 제도는 공공미술의 작동방식에 공공성을 대입하고자 한 시도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해당사자 간의 의견 조율과 반대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또 다른 하나는 새 장르 공공미술이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공공미술에 있어 타자로 인식되어 왔던 지역 구성원을 중심에 놓고 사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실행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업이 소외계층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 사업에 그쳤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보여주었다.6 새 장르 공공미술 역시 공적 기금을 통해서 관에 의해서 주도된 까닭에 비가시적인 움직임들을 소외계층의 생활환경 개선이라는 가시적 형식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행정적 필요성이 부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공동체를 직접 대면하고 미술의 사회적 외연을 확장하고자 했다는 그 의미를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최근 현황: 국가 기관에 의한 적극적인 초대
최근 한국 사회에서 공공미술과 관련하여 목격되는 상황 중 가장 독특한 것은 공공미술이 국가 기관에 의해 적극적으로 초대되고 있다는 점이다.7 국가가 문화예술을 초대한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국가는 언제나 자신을 대외적으로 표상하기 위해서 문화예술을 활용해왔다. 그리고 90년대 지방자치제 이후 지방 정부는 지역 정체성을 새롭게 구현하고 지역의 이미지를 재창출하며 이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각종 축제 및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예술 형식이 지방정부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호명되어왔는데, 마찬가지 이유로 최근 공공예술이 지방정부의 적극적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이다.8
이러한 초대는 지금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의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한국의 도시들은 대부분 60, 70년대 산업화 과정 속에서 산업도시로 재건되었다. 재건의 과정 속에서 도시는 확장의 가치를 최우선시했다. 산업생산기지로서 도시중심이 개발되고, 이러한 개발을 통해서 도시의 기능은 확장되었으며, 도시가 그 확장을 더이상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신도시 개발이라는 형식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나갔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조건의 변화로 사회 구성원들은 스스로 삶의 질의 향상을 요청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요청은 신도시 개발뿐만 아니라 낙후된 도시의 중심부를 재건하는 데 있어서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즉, 도시가 예전과 같은 산업생산기지로서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조건이 충족되고 또한 인간으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지방정부로 대표되는 국가 기관은 공공미술을 주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도시 개발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 기관에 의해서 초대되는 공공미술은 간판이나 도시의 벤치 및 육교와 같은 공공 시설물을 예술적으로 변화시키는 도시환경 개선 프로젝트에서부터 도시의 중요 지점에 도시의 상징물을 설치하는 작업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초대는 변화된 사회 문화적 조건 내에서 행정이 미술을 어떻게 상상하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가 된다. 이 안에서 미술의 자율성은 ‘독특한’ 도시 리노베이션을 위한 도구적 차원으로 전용된다. 또한 ‘미술은 아름다우며 고귀하고 특별한 것’이라는 근대적 의미의 가치만이 취득될 뿐, 미술이 사회와 호흡하며 만들어질 공공성과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은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9 이러한 지점에서 작가와 큐레이터로 대표되는 미술계의 전문가들이 관과 어떻게 협상하고 미술의 고유한 의미의 폭을 확장시켜나갈 것인지는 매우 중요해진다. 도구적으로 전용되는 공공미술과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포기될 수 없는 (공공)미술의 가치, 그리고 시민사회와 대면을 통해서 다시금 창조될 수 있는 미술의 가치는 최근 목격되는 공공미술의 현상에서 중요한 지점으로 파악된다.

공공미술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지금까지 공공미술의 의미와 한국 사회에서 공공미술이 위치하는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 글이 언급하지 않은 부분은 시민사회가 초대하는 공공미술이다. 한국 사회에서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공공미술을 초대한 경우는 없는 것 같다.10 어쩌면 시민사회는 아직 미술을 초대할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공공미술은 관이나 기업이 미술을 초대해서 시민사회에 제공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시민사회에 봉사해야 하며, 관은 공공미술의 의미를 시민사회에 교육시켜야 한다. 이 지점에서 이러한 상상을 해본다. 국가 기관이 특정 지역 간판의 정비 차원에서 작가와 디자이너를 공공미술의 이름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상인회와 같은 시민사회에서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 연예인이 대신 공공미술을 초대하고 이로써 그 지역간판을 변화시키거나 상가에 새로운 쉼터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의를 통해서 상가의 문화적 가치를 시민사회 구성원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공공미술의 가능성이 가장 구체적으로 잘 발휘될지도 모른다.
결국 공공미술 변화의 과정은 미술과 시민사회와 국가라는 3자의 길항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한다.11 미술-시민사회-국가는 각 분야가 갖는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는 신뢰를 기반으로 새로운 공공성을 상상해야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매우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공공미술을 둘러싼 의미망을 파악할 때 우리는 이 3자의 고유한 위치를 존중하면서도 서로가 미술이라는 실체를 통해서 새로운 공공성을 창조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예들을 만들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3자 간의 긴장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공공미술은 그 결과가 무엇이 되든지 간에 특정 주체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민사회나 관의 권위가 강조될 경우 미술의 자율성은 확보될 수 없으며, 미술의 자율성이 강조될 경우 시민사회와 관의 역할과 의미는 퇴색된다.
공공미술은 사회에 해결책을 제공해주는 주체가 아니다. 사회와 인간의 문제는 미술보다 의학이나 공학 등이 더욱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공해줄 것이다. 다만 미술은 다른 학문들이 제공해 줄 수 없는 가능성과 지점을 사회에 제안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가 NGO의 활동가가 될 이유도 없으며 사회의 미화부장이 될 필요도 없다. 공공미술의 존립근거가 낭만적 이상과 도구적 전용 속에 위치해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시민사회와 관이 자신들의 문화적 조건에 따라 미술을 초대할 수 있는 당위성을 부여받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공공미술은 미술의 고유한 가치와 작동방식이 국가와 시민사회를 직접 대면했을 때 어떠한 의미의 파장을 형성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며, 시민사회와 관은 미술을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초대할 것인지에 대한 본래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공공미술의 가치일지도 모른다.

1 여기에 시민사회를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공공미술을 통해서 시민사회가 주체 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가 문화사회로 전이 되면서 자신들의 삶을 문화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에 따라 시민사회가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움직임들은 물론 있다. 그러나 공공미술에 있어서 시민 사회가 주체적으로 초대한 예는 현재로서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사회에서 다 양한 방식의 공공미술 움직임들이 촉발된 현 상황에서 앞으로는 달라질 것으 로 기대한다.
2 관의 경우 도심 재생이나 리노베이션을 통해 도시 공간의 시설들을 개조하거 나 거대한 광장이나 공원 등에 미술작품을 설치함으로써 문화적 조건을 만드 는 것이 대표적이며 기업의 경우는 기업의 이미지를 미술을 통해 표상하기 위 해서 다양한 방식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3 여기에서 언급하는 미술의 고유성과 자율성은 근대적 의미의 고유성 자율성에 국한되기보다 오히려 유사 이래 발전시켜온 그리고 지속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미술 자체의 가치에 관한 것이다.
4 이러한 비판의 대표적인 예로 뉴욕에서 있었던 리차드 세라의 <구부러진 호>(Tilted Arc) 사건과 서울에서 있었던 프랭크 스텔라의 <꽃이 피는 구조물: 아마벨>(Flowering Structure : Amabel) 사건 등이 있다.
5 이러한 예로 2006년과 2007년 문화관광부와 공공미술추진위원회에서 시행된 <아트인시티 프로젝트>를 들 수 있을 것이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다원예술 위원회는 2007년 정기 공모에서 중점 사업으로 ‘새 장르 공공예술’을 선정하고 집중 지원했다.
6 대표적으로 <아트인시티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7 이러한 현상은 기업을 통해서도 목격되고 있다. 기업은 사회에서 미술이 갖는 독특한 지위를 전용함으로써 새로운 기업 이미지를 현대 소비산업사회에서 재 창출하고자 한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이 공공미술이다. 대기업 건물의 리노베이션 가림막에 미술을 끌어들이거나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기업 의 본사에 설치하거나 혹은 그러한 작품으로 구성된 정원을 설치하여 고객들 이 이용하게 하는 방식이다.
8 이러한 대표적인 예로 안양시의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와 서울시의 <도시갤 러리 프로젝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9 이러한 과정 속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은 미술계와 디자인계의 갈등이었다. 환 경 및 산업디자인이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자 미술계는 자신의 영 역이 디자인에 의해서 도전 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공공)미술의 당위적 가치 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공공미술을 초대한 관의 입장에서는 당연 한 것일 수도 있다. 관은 미술계가 인식하는 공공미술을 초대한 것이 아니라 도 시 재개발에 있어서 그 도시를 잘 디자인해줄 자신들의 공공미술을 초대한 것 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연치 않게 (공공)미술로 명명되었지만 그것 은 전문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공공)디자인이었을 것이다. 서울시에서 디자이 너를 부시장으로 특별 임명한 것은 이것을 대변한다.
10 헤이리예술인마을나 파주출판단지를 예로 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매 우 특수한 경우로 생각된다.
11 물론 여기에서 시장의 역할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미술이 기 업체나 개인 컬렉터의 과시적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의 공공적 가 치를 인식하는 것을 강조한다면 시장의 역할은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2008 문화예술』328호 (2008년 봄), pp.8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