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포털 관련 전문가 칼럼입니다.

'미술장식 제도' 다시 생각하기. 말 많은 미술장식 제도, 성과와 대안
홍경한
2009-06-01

우리가 통상 '환경조형물'(원래 환경조형물이란 분수대나 상징탑 등을 지칭한다. 건물 앞이나 인근에 우두커니 서 있는 조각품이나 벽화, 조각, 실내 회화 등은 엄밀히 말해 조형예술품으로 분류된다. 허나 본 내용에선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일반적이고 포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환경조형물'로 표현한다.[편집자 씀])이라 부르는 '미술장식품'들의 다수는 미적 가치 재고나 시민을 위한 공공재로서의 기능은커녕 '시각적 공해'를 유발하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조형적 관점에서도 빼어난 작품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벽화를 포함해 서울 경기 일원에만 약 5천여 개, 전국적으로 8천여 개가 넘는 작품들(2004년 기준: 문광부, 이중 조각이 전체의 약 80%를 차지한다.) 중 주변 환경을 고려하거나 예술성을 담고 있는 작품은 10%도 채 안 된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한해 1천 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 오가지만 도시의 명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랜드 마크'로써의 가능성을 함유한 것 역시 드물다고 보는 게 옳으며, 그나마 몇 개 있는 것도 외국작가의 작품인 예가 적지 않다.


이상과 현실의 엇박자 '미술장식제도'
공공의 장소에 놓인 미술의 진정한 역할은 미적 가치를 향유하고 그것을 통해 삶의 긍정성을 배가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특히 아름다움의 교감을 전제로 한 '공유'를 목적으로 그것이 자연스럽게 우리네 삶 속으로 배어들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다 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미술장식제도가 처음 제정될 당시만 해도 이는 하나의 이상이자 실현될 현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반하는 미술작품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비리와 부정의 온상으로 치부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공재로써의 위치와 역할은커녕 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자문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비호감에 머무는 미술품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넘어 미술장식품이 부패와 검은 돈 거래의 씨앗이라는 인식이 생길만큼 초기 제도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들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대 미술장식제도를 악용해 사법처리를 받은 예는 꽤 된다. 지난 2000년 5월 신축 건물의 조형물 설치를 둘러싸고 화랑대표, 조각가, 건축미술심의 위원, 공무원 등 22명이 미술품 대가로 15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무더기'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02년에도 건축주나 알선브로커에게 리베이트를 주고 미술장식품을 납품한 혐의로 부산 모 대학 조소과 교수를 비롯한 건축주 등 모두 9명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해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또한 2007년 SH공사가 발주한 서울 장지동 동남권유통단지 내 이주전문상가에 설치될 미술장식품이 모작 논란과 불투명한 선정 방식으로 인해 잡음이 일었으며 지난해 10월엔 수천만 원의 납품 대가를 되돌려 받고 미술작품을 구입한 혐의(배임수재)로 J건설 대표를 구속하고 브로커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해를 거르지 않고 터져 나오던 비리의혹은 올해도 비껴가지 않았다. 최근 검찰은 미술장식품을 제작, 납품하며 '검은 돈거래'가 오간 정황이 있다며 수사에 나섰다. 이미 관련자들을 소환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이번엔 이전과 비교해 다소 후유증도 크게 남을 것 같다는 게 미술계 인사들의 우려다. 미술계 역시 깊은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라 씁쓸한 여운도 그만큼 짙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미술계 지식인들은 지금이야말로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미술장식품이 본질이 곡해된 채 대표적인 미술계 골칫거리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게 그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미술장식제도'와 미술계
전문가들은 예술성, 환경과의 조화 따윈 전혀 고려치 않은 건축물 앞에 세워져 있는 조각품들에 대해  '문패 조각', '껌 딱지 조각'이라 비아냥거린다. 설치 의무자인 건축주들의 참여 동기를 제공하지도 못하고 소위 공공의 주체인 시민들 또한 자의식과 가치관과는 상관없이 매일 심미적이지 못한 작품들(시민들의 비성숙한 문화적 소양을 지적할 수도 있으나 이는 보편적 당위성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도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다.)을 어쩔 수없이 보고 지나쳐야하는 고통의 시간들을 반복한다. 특정한 공간에 특정한 작품이 왜 들어서는지, 무슨 이유로 감흥 없는 구조물들을 마주해야하는지 시민들은 몰랐고 비민주주의적이고 비시민참여적인 행태에 대해 그 누구도 적절한 해답을 주지 않았다. 때문에 미술장식품 제도에 의해 탄생한 수많은 환경조형물들은 그저 무관심한 대상으로, 천덕꾸러기로 남게 되었다.


헌데 방치되다시피 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 속은 의외의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겨운 비릿함마저 풍긴다. 돈이 흐르는 물은 맑을 리 없듯 그 냄새의 원인은 수질이 맑지 못한데서 찾을 수 있으며 그 발원지는 역설적이게도 한해 1천억 원 가량 되는 금액이 오가는 미술장식품 제도에서 시작된다. 사실 오늘날의 미술장식품 제도는 소수의 이기를 위한 금광으로 치부된다. 순수한 창작가 보다는 차라리 전문적인 조형물  대행사, 즉 일부'꾼'들이 득세해 미술장식품 선정 권한이 있는 건축주들과 결탁, 설치과정에서 다양한 비리를 저지르는 데 악용되는 저노동 고임금의 노다지이자 엄청난 설치 및 제작비 등을 끼리끼리 나눠 먹을 수 있는 '눈 먼 돈'의 근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미 수면 위로 부상한바 있고, 이에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각 지자체가 선정한 미술장식 심의위원회가 설치되었으나 '사후심의'라 도시미관에 대한 기여도나 건축물 및 환경과의 조화를 따지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일부 심사위원들이 비리에 연루되면서 공정한 심의 따윈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와 같은 결과들은 현행 미술장식 관련법이 어떤 방식으로든 진중한 모색을 거쳐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할 단계에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랄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부에선 미술장식제도 존립을 주장한다. 수정 및 보완, 개선의 여지도 주지 않으려 한다. 그 이유로 그들은 주로 '작가 생존권'을 내세운다.


하지만 냉정하게 관찰할 때 미술장식제도가 생계가 어려운 작가들을 위한 보호막 기능을 효율적으로 갖추고 있다거나 생존권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해당 제도를 통해 평범한 작가들이 순수하게 혜택을 받는 경우보다는 앞서 언급한 소위 '꾼'들과 커넥션을 형성한 이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지나치게 많음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생존권'이란 어쩌면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악용하려는 이들에게 필요한 그럴싸한 '명분'에 불과하거나 그야말로 자신들의 '생존권'만을 염두에 둔 발언일 따름이다. 이는 미술장식품이 작가들의 생존권을 일부 화두로하여 만들어진 게 사실이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으로는 무의미하게 다가온다는 뜻이다.

문제의 씨앗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
사회적 논란이 될 만큼 많은 비리가 행해지자 일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설계도에 그려진 미술장식품이 실제 설치 작품과 일치하는지, 어느 장소에 걸렸는지 꼼꼼히 따지기 시작했다. 자체 위원회를 조직해 철저히 검증하고 부실하거나 작품 수가 부족한 경우 적극적으로 대책을 요구하며 집단민원을 제기하는 사례도 늘어만 갔다. 산발하는 부정에 정부도 개선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지난 2004년 문광부는 건축물 미술장식제도를 '공공미술제도'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민간예술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가칭)'공공미술센터'를 설립, 운영(문화예술진흥법 11조, 시행령 개정)하기로 했다. 더불어 미술품 표준단가 및 제작 현황·작가 정보 등에 대한 전국적인 공공미술 정보 DB를 구축, 현재 운영 중인 지자체별 '공공미술관리위원회'의 미술장식 심의 과정을 지원·감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내용 속엔 건축주로부터 일정한 금액을 거둔 후(기금제도) 작가를 선정, 적재적소에 작품을 배치하는 방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술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와 공적 기관에서 작가들을 관리 통제함으로써 자유로운 창작의지를 말살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우세했으며 여기에 관계인들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매듭짓는 데 실패, '공공미술센터'발족 안은 끝내 불발로 그쳤다.

그러던 중 지난 2006년 5월 국가청렴위원회는 '건축물 미술 장식품 계약과정에 견제장치를 도입하고 중장기적으로 미술품 설치 의무조항을 폐지하라'고 문화관광부에 권고했다. 권고에 따라 문광부는 공청회를 열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이 또한 지지부진하다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었다. 덕분에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한 미술장식제도는 양날의 칼처럼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함유한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문제 많은'미술장식품 제도'에 대한 대안
사실 '미술'의 사회적 공기 역할을 부정할 순 없다. 다만 어느 면으로 보든 작금의 미술장식품 제도는 반드시 본래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애초 제도의 의의와 목적이 어떠했던 현재는 말썽만 양산하는 골칫덩이이자, 병폐로 지적되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지금이야말로 법적, 제도적 변화를 강구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란 현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실체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대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재원'의 변화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 건축주가 환경조형물을 설치할 경우 전적인 부담에서 탈피해 일정 부분을 '공공미술출연기금'을 만들어 지원하거나 문화예술진흥의 일환으로 세금 감면 등 일정한 보상제도가 뒷받침 되어야한다. 그래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관행에서 벗어나 양질의 작품을 설치할 수 있다. 재원의 실질적 운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 달라스의 경우처럼 일정한 퍼센트를 사후관리 비용으로 책정해 공공미술의 지속성을 꾀하거나 심의에 건축주도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식 창구를 개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모니터링 제도'를 두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야 투명성, 객관성의 담보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의무 시행 15년가량 유지되어온 미술 '장식'이라는 구태의연한 개념에서 벗어나 '공공미술', 더 나아가 뉴 장르 공공미술까지 아우르는 확장된 시각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반드시 건물 앞에 동상이나 모뉴먼트 같은 어떤 조형물을 세워야만 한다는 고정의식에서 이탈해 넓게 바라보는 마인드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딘가 '치장'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현재의 '미술장식'이라는 명칭부터 바꿔 공공미술의 개념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 된다면 미술가들이 처음부터 계획, 진행, 사후관리까지 관여할 수 있는 근본적인 시스템 정비가 차차 이뤄짐은 물론, 시민들이 논의와 담론 형성에 어떤 방식이든 참여할 수 있는 구조적인 체계가 갖춰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처럼 아무런 통제장치, 있으나마나한 규제 장치로는 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심사위원들의 부정을 막기 위해 공적인 기관에 의한 '심사위원 지원제도'를 설립하거나 현행 신고제인 대행사들을 '허가제'로 변경해 무분별한 난립을 막고 30%에 달하는 대행사들의 수수료율에 한계를 정해야 한다. 특히 여러 미술권력으로부터 휘둘리는 작가들을 보호하고 양심적으로 작품제작을 할 수 있도록 그들에 대한 실질적, 실체적 대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질적으로 환경조형물을 포함한 공공미술에 전반에 대해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전문기구'의 설치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현 시점에선 요원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의 대안 제시가 이뤄질 수 있는 루트가 협소할 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현장에서 행정직과의 마찰을 줄이고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현행 미술장식제도로는 갈수록 팽창하는 공공미술의 진흥을 모두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지금은 어떤 형태로든 공론화 하는 자리부터 마련되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평론가, 행정가, 디자이너, 작가, 화랑주 등이 모여 심도 있는 의견을 개진하고 조율해 법적 제도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해야만 한다.■

[미술장식제도 연혁] 연면적 1만㎡ 이상 공동주택이나 근린생활시설을 신ㆍ증축할 땐 건축물 규모별로 비율에 따라 최고 0.7%의 비용을 의무적으로 회화ㆍ조각 등 미술품 설치에 사용해야 한다.(「수도권정비계획법」 제14조제2항. 의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설치가 완료되지 않으면 건축물 준공검사를 받지 못한다. 1997년 이후 일정한 공간을 함유하는 건축물은 반드시 미술품 설치를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공공시설의 건축 속 예술프로그램과 프랑스의 1%법을 벤치마킹한 이것은 72년 처음 문예진흥법이 제정될 당시 권장사항으로 출발해 95년 대통령 선거 공약사항으로 선정, 동법 의무사항(문화예술진흥법 제9조, 시행령 제12조)으로 개정되었고 99년 기존 1%에서 그 이하로 완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설치의무자는 건축주이며 미술장식의 설치 절차 및 방법 등은 시행령 제13조, 심의는 시행령 제14조, 철거 훼손에 관한 규정은 시행령 제15조에 따른다. (서울시는 1984년부터 의무사항으로 조례에 포함시켰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드고 잠실 등 7개 지역에 미술장식용 조각을 설치, 진흥하는 위원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당시 심사는 주로 미술협회가 맡곤 했다.) 

출처: 『월간 퍼블릭아트』33호 (2009년 6월), pp. 132-137